지난 4월 성주간 때 일이다. 본당 성삼일 전례에 참여하면서 교회는 참으로 남자 중심적인 편견에서 아직도 성차별이 심하다는 생각을 더욱더 하게 되었다.
첫날은 성목요일로 최후의 만찬 미사 때였다. 제대위에는 신부님을 비롯하여 미사해설자、복사들、및 독서 낭독자 까지 모두 하나 같이 남성들이었고 신자들의 기도도 모두 남성들이 담당했다. 그리고 세족례때도 12명의 남자분들이 제대를 가득 채웠다.
본당의 모든 여성을 대표해서 적어도 한사람의 어머니라도 열두 사람 중에 끼어 있어야하지 않았을까? 인간평등을 누구보다 부르짖는 교회에서 이렇게 차별을 하여서 되나 하고 혼자 속상해 했다.
성금요일도 역시 전일과 다름이 없었다. 수난복음(요한복음서 18、1~19、42)은 인물에 따라 남성들이 예수、베드로 빌라도 등을 담당하였고 성당을 꽉 메운 신자들은 대부분이 여성들이었는데 이들은 그 당시 군중들 대신해서『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목청을 높여 소리를 지르는 역할을 담당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것 역시 이상한 느낌이들었다.
그런데 성토요일 부활전야에 미사도 아무 변화없이 똑같은 형식으로 전례는 진행되었다. 정말 너무하지 않은가? 신자들의 기도 하나만이라도 여성이 담당할수 없단말인가. 그리 아름답지도 않은 무뚝뚝한 사투리가 섞인 목소리의 신자 기도는 그날 나에게 많은 분심을 주었다.
포스트 아메리칸(Post American) 잡지에서 전통주의자 토마스 호워드씨는ㆍ성세에 나오는 여성들 즉「사라」「데보라」「에스터」「야엘」「안나」「돌카스」와 그밖에 바오로사도의 집회를 도운 여성들의 이름을 들어 나열하는 방법으로 여성평등권을 방어하려고 한것은 자가당착이라 할수 있는데 왜냐하면 남성 예언자들과 남성 사도들의 이름을 다 열거한다면 그 긴 남성의 목록에 비해 여성의 목록은 너무 짧아서 무색할 정도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성서적 여권주의자들이 지적하는 요점은 그 여성목록과 남성목록을 비교하여 능가한다거나 동일하다거나 하는것이 아니고 그보다는 오히려 여성들의 이름이 전혀 밝혀지지 않은 성서의 가부장권적 상황속에서 하느님이 뜻하시는 섭리가 기록되어져 있다는데 놀라움이 있다는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 당시 거듭거듭 남성제자들의 철저히 성차별적이며 틀에 박힌 전통적사고의 반응을 교정해 주어야만했고、예수의 제자들은 예수가 사마리아 여인과 담화하시는 것에 충격을 받았고 천한 여인들로 하여금 주께 가까이 오는 것을 허용하시는데 몹시 언짢게 생각했다.
제 1세기에 있었던 일을 이용함으로써 인간평등 사상의 근거를 찾으려고 하지는 말아야 된다고 한「호워드」박사의 말은 확실히 옳은것 같다.
비록 복음의 영향력을 정화하더라도 성서적 사건들은 역시 어느 정도가 부장적이고 성차별주의적이다.
그러므로、성서적 여권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과 같이 우리도 평등의 근거를 삼위일체의 성서적 교리에、하느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창조에、하느님이 사람의 모습을 취하신데에、그리고 새로운 삶에서 찾아야 한다는 말에 귀 기울일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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