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시대가 되었나 보다、여기저기서「열렸다」는 말맛을 풍기고 있다.「열린 신문」,「열린 음악회」,「열린 글방」,「열린 소리」,「열린 광장」등「열린」뜻을 붙인 제목들이 많아졌다. 이미 열렸다는 뜻과 더 열어보겠다는 뜻을 함께 지닌 것으로 보인다.
열림과 닫힘의 차이는 마치 한겨울에 창문을 열고 닫음에 따라 느끼는 온도의 차이 만큼 크다. 소름이 돋을 정도의 찬 바람이 사람을 움추리게 하는 반면 신선한 공기가 건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과 같이 열려서 주는 자극도 만만치 않다. 이러한 충격을 우리가 소화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건강한 가치를 얻게 된다.
여는 정도의 차이를 둘 수도 있고 연 시간의 차이도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열림은 어느 한쪽에 치우친 열림이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이를테면 사회적, 개인적 차이가 크고, 또 자신과 상대, 분야에 따라 열림의 정도가 다른 현상을 보게 된다. 열린 사회의 의미를 베르그송은 닫힌 사회에 견주어 열린 도덕과 열린 종교를 바탕으로 한 사회로 설명한다. 닫힌 도덕은 변화를 인정하지 않는 도덕으로 어떤 시간에 주어진 형태가 궁극적이며 절대적인 동시에 의무의 도덕이고 책무의 도덕으로 규정한다. 사회에서 요구되는 의무가 구성원에게 압력으로 느껴지면 그것은 곧 사회적 압력으로 강요되는 도덕이 된다. 반면 열린 도덕은 변화를 인정하고 승인하는 도덕이고 사회적 압력이나 의무의 도덕과 다르게 생명의 창조적 활동에 의해서 항해지는 도덕이다. 변화와 발전을 토대로 하는 창조적 사회를 의미한다.
개방사회, 즉 열린 사회의 방향은 창조적 사회이며 성숙사회로 가는 길이다. 창조적 사회는 하나가 아닌 다른 것, 다른 생각, 다른 표현이 있을 수 있고、있어서 좋고 또 있어야 하는 것이다. 성숙사회는 관용과 수용、즉 생각과 표현과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를 의미한다. 서로 다른 개체의 활동이 아니라 개체가 전체로 뭉칠 수 있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 사회로 발돋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언로가 열린 사회가 되어야 한다. 물길은 막을 수 있어도 말길은 막을 수 없다는 평범한 말 속에 깊은 진리가 스며 있음은 상식적 교훈이다. 말(言)길을 트는 것은 난(亂)길을 막는 지혜이다. 말에 대한 화근이 설화로 빚어졌던 정치적 악습은 공개보다는 비밀주의로 가거나 일방적인 통고의 수법으로 통용되어왔다. 이런 술수는 발표의 배경과 내용보다는 효과를 내기에만 급급하다. 실속보다는 드러내는 모양에 더 신경을 쓰는 분위기로 기울어간다. 개인이나 사회에서 진실된 언로가 막히면 유언비어가 날조되어 형형색색으로 난무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터 놓고 얘기할 수 있는 상대를 점점 잃어가고 있는 더 큰 슬픔이 있다.『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칠 수 있는 고독을 찾아야 할 정도로 터 놓을 수 있는 상대를 찾지 못하고 있다.
정부나 사회단체는 국민에 대해서 정치적 효과와 국가적 이익(?)을 위해서인지는 모르나 속보다는 겉모습에 더욱 신경을 쓰고 있다. 언론도 그러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개인도 그렇게 닮아가고 있다. 지속적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일시적 유행으로 지나치는 타성으로 굳어가고 있다. 역사의 교육적 가치를 망각하고 있다. 현실적 합리성에 맞추려는 강한 논리가 행세하고 있다. 열린 마음이 없이는 발전사회로 지향하는 성숙사회를 기대할 수 없다. 사회적 병폐와 개인적 갈등은 점차 확대되게 마련이다. 열린 사회의 노래가 허공에 머물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쇼나 극화의 방식으로 윤색하는 일은 줄여야 할 과제이다.
언로가 트인 사회는 정신적 공유의 면적이 넓어진다. 개개인의 의견과 주장이 합쳐질 수 있는 공동의 장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정보사회가 몰고 온 열린사회의 열풍을 우리 사회도 변화의 바람으로 수용한다면 좋은 계기로 승화시켜야 한다.
사회적으로 공적 사명과 역할을 인정 받는 단체에 있어서 열린 말길을 선택해야 함은 도덕적 가치이다.
교회의 복음이 널리 알려질 수 있는 말길을 넓히는 길은 구원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어야 한다. 정신과 물질의 갈등 속에서 헤매는 많은 사람에게 한 모금의 물을 주는 마음으로 말길이 트여야 한다. 교회가 앞장 서는 까닭도 하느님의 가르침을 널리 알리는 교회와 믿는 이의 양심 때문이다. 말씀을 따르는 열린 사회가 가는 길이 성숙사회이며, 열린 사회의 열린 말길을 확장하는 일이 곧 열린 종교의 기반을 다지는 일이다. 닫힌 종교의 길은 열린 종교의 길을 보존하기보다 허물어뜨리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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