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 주일 간격을 두고 묵상회에 감으로써 은혜의 감격이 연이어질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러나 교육시간、담화시간 등이 모두가 냉정한 분위기로 느껴졌을 때、나는 참으로 고통스러울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나는 차츰 이 의미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은혜를 받으러만 갔던 것이었습니다.
처음에 갔던 묵상회에서 너무도 큰 은혜를 느꼈고 계속하여 그와 같은 상황을 원하고 갔던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잘못이었습니다. 처음은 먼저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두 번째는 은혜의 접근을 너무도 쉽게 생각한 것이었습니다.
묵상회 중에 시련은 더욱 큰 것이 왔습니다. 한국에 계신 아버지께서 위독하시니 급히 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바로 일주일 전에 전화로 즐겁게 말씀하시던 아버지였습니다. 이것은 바로 안수식 몇 시간 전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분명히 주님의 가르치심을 그대로 나에게 적용하시는 은혜를 주심을 나중에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피정 도중에 가느냐」「마치고 가느냐」의 갈림길에 섰습니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가르치셨습니다.『네 재산을 버리고 지금 오라』또 주님께서는 분명히 가르치셨습니다.『장례는 그들에게 맡기고 먼저 하늘나라의 소식을 전하라』나는 전화기 앞에서 울면서 기도회를 마치고 갈 것으로 정하였습니다. 묵상회가 끝난 후 나는 한국에 갔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장례식은 이미 볼 수 없었으며 아버지의 방과 소지품만 보고 돌아왔습니다.
이 슬픔 속에서도 하느님께서는 분명히 은총을 주시고 계셨습니다. 마지막 묵상회의 끝시간에 간단한 느낌 보고들이 있게 되었습니다. 남편의 표현은 간단하고 단순했습니다.『저는 어떤 뜨거움이나 방언의 은혜를 얻지 못했습니다. 제가 얻은 것이라면 머리에 두터운 쇠모자를 쓴 느낌이 계속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간단한 해석으로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주님께서는『너는 나와 함께 하기에는 너무도 세속의 생각들이 많다. 그 생각들을 버려라』고 말씀을 하시면서、머리의 윗부분을 쓰지 말라고 하시는 뜻인 것 같습니다』 바로 남편의 이 표현을 들으면서 어쩌면 그는 가시관을 받은 것인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나의 이 추측은 차츰 맞아갔습니다. 묵상회에서 돌아온 남편은 하루 아침에 모든 신앙의 태도를 바꾸어 버렸습니다.
한 번에 열어버린 남편의 신앙생활과 나의 신앙생활은 빠른 속도로 생활의 변화를 초래하였습니다. 이 상황에서 만일 직장과 경제 형편이 하루 아침에 풀린다면、그야말로「간증 속의 간증」으로 크게 하느님의 은혜를 증거할 수 있겠으나 우리에게 내려지는 은혜는 물질과는 거리가 먼 길로 계속 다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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