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온다.
봄이 오면 지난 세월과 겨우내 잃어버린 우리네 삶의 의미, 또는 자유라든가 순수한 생명력 같은 걸 되찾게 되리라는 생각에서 가슴이 설레인다.
봄이 오는 것을 회춘이라고도 일컫는다. 나에게 있어 그것은 마치 유년시절의 작은 몸짓에 가장 맑은 빛이 일던「유리알」의 계절이 되돌아오는 것과도 같다. 늙고 또 죽어가는 몸에서 죄의 냄새를 씻고, 고향의 언덕 그 남향받이에서 봄의 햇살을 쬐고 싶다. 봄이 오면 누구나 새로이 살고 싶어지는 것이다.
이제 음력 3월의 문턱에 들어선다. 어쨌든 사순절을 겪고 난 다음에야 진정한 봄이 온다고 할 수 있다. 그때에야 또 우리 안의 그립고 아름다운 인간애가 비로소 눈을 뜨게 된다. 바로 그만큼 순수한 인간 본성 위에 따뜻한 바람이 안겨오는 것이다. 천사의 숨결이라고나 할까. 그러한 봄의 바람결 속에서 우리는「살아있음」, 곧 생존을 확인할 뿐더러 삶의 은혜로움을 노래하게도 된다.
정월이 다 가고 삼월이라네/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며는/이 땅에도 또 다시 봄이 온다네
요샌 이런 노래를 부르지 않는지? 옛날에는 학예회 때 이런 노래를 부르곤 했었다. 이 노래 속에는 희망이랄까. 감격 같은 것이 들어 있다.
이 시대는「희망」을 모르는 것 같다. 희망이 없는 게 아니라 희망을 잃어가면서 그것을 질식시켜 죽이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에게 최후로 남겨진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곧 희망이 아닐까? 이 땅에 다른 무엇보다도 희망이 있어야겠다. 그 희망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이 땅에도 다시 봄이 오되, 그것은 우리네 마음과 삶의「근본 도리」, 즉 종교 내지 신앙에서부터 와야 한다. 신앙하고 희망하는 삶에서라야만이 생명이 꽃 피고 더욱 밝아지는 봄이 오지 않겠는가. 그리고 또한 부활하신 절대 자유와 영원의 주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시어 평화를 건네주지 않겠는가.
꽃소식, 곧 화신이 차츰 북상길에 오르고 봄비가 메마른 대지를 촉촉히 적실 즈음이면, 우리네 마음의 배 고픔과 영혼의 목마름도 채워져야 한다. 우리네 삶에도 봄의 의미로 축복이 새로이 가득 넘쳐 흘러야 한다.
이 땅과 사람들의 갈구와 희구가 무엇이든, 그것을 우리 스스로가 저버려서는 안 되고 다른 어떤 세력에 짓밟혀서도 안 된다. 살아있는 목숨들, 그들 저마다의 꿈은 지켜져야 하고 서로가 지켜주어야 할 뿐이다.
아아, 내가 봄을 맞이하면서 가슴이 설레이듯 벅찬 까닭을 이제야 알겠다. 그것은 우리네 인간과 그들의 꿈 때문이다. 늘 죽어가고, 그러나 죽었다가도 되살아나 꽃을 피우는 생명의 꿈, 부활에의 꿈 때문이다. 잃어버릴 수 없는, 삶에의 불여의와 실의 속에서도 쉬지 않고 거듭 부를 수밖에 없는 인간 생명의 꿈과 그 노래 때문이다.
중국 청나라의 심복이란 분이 쓴「부생육기」(흐르는 인생의 찬가)라는 문고본을 나는 즐겨 읽는다.
사람의 한 평생은 하나의 커다란 꿈/꿈 속에서 어쩌자고 애써 따지려는가. (人生世界一大夢 夢裏胡爲若認眞)
나는 이 글을 읽을 때마다 삶에의 고통과 괴로움이 오히려 우리를 구원한다는 생각을 해버릇 한다.
애써 구해서 소유하고 누리다가, 그것이 사랑하는 사람이든, 재물 또는 명예나 권력이든, 하나씩 둘씩 차례로 잃어가고, 그러면서도 이 인생, 곧 인간 생명의 소중함에 눈물 지으며 가슴이 미어지도록 애착심을 지녀 갖는 인간상, 우리 모두가 그러할 뿐이다. 인간으로 태어난 비애라고나 할는지. 사람들은 저마다 생명의 꿈을 저버릴 수 없기에 더욱 슬프게 살아가는가 보다. 인간의 불행이 여기에 있다면, 인간의 구원 또한 여기 이러한 데 있다는 생각을 나는 끝내 지워버릴 수가 없다.
이 봄에 나는 부활절의 주님께서 돌무덤을 깨뜨리고 나오셔서 막달라 마리아의 눈물을 닦아주셨듯이, 너와 나의 눈물도 닦아주시고 위로의 말씀이라도 한마디 건네주시리라는 소원을 가져본다.
모든 것이 죽어가고 이제는 새 봄의 언덕에서 남은 사람들이 희망하듯이…(쟝 꼭또)
부활의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기 오시어 우리 마음 안에 사시고, 이 땅에는 진정한 봄이 우리네 마음에서부터 비롯해 우러나오도록 기도하자. 언제나 꿈을 잃지 말고, 생명을 희망하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자.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