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가톨릭교회안에서는「가난한 교회」가 되자는 말들이 많이 나돌고 있다. 얼핏 생각하면 가톨릭교회가 얼마나 부자이기에「가난」해자지고 외치는가 하고 의아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농촌본당뿐 아니라 대도시의 큰 본당까지도 돈이 모자라서 외상공사를 하는 판이고 통장에 남아있는 돈이 거의 한푼도 없는 처지에 무슨 이유로「가난」을 강조하는가 라고 말하는 본당 신부님이나 본당 사목회장이 많은것이다.
◆2백주년 기도문속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오로 6세 회칙인「현대세계의 복음화」나「한국천주교 2백주년 기도문」속에서「가난한 교회」가 되자고 주장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고보면 거기에는 분명히 무슨 까닭이 있을 것이다.
「가난」이라는 뜻은 너무도 깊은 신학적 의미를 지닌 개념이기에 필자로서는 그말에 대한 정확한 설명을 할 수는 없다. 더구나「마음의 가난」과「물질적 가난」이 어떻게 상관되느냐하는 문제에 부딪치면 정말 해설할 능력이 없다.
그래서 필자 나름대로「가난한 교회」가 무엇을 뜻하며 무엇을 추구하는가를 생각해 보았다.
오늘날 도시본당의 경우에 분명히 하나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그것은 같은 본당신자이면서도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사이에 보이지 않게 사귐이 이루어지지 않고있다. 바꾸어 말하면 교회안에서도 못사는 사람은 소외를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본당신부나 잘사는 신자가 고의적으로 못사는 사람을 무시하거나 경기하는 것은 아니다.
◆헌금 못내 타본당미사에…
그런데도 못사는 사람이 소외감을 느끼는 일이 있다면 그 원인과 책임은 어디에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본당을 신축하거나 보수할 때 헌금을 내지 못하는 것이 죄스러워서 미사 후에 도망가듯이 집에 돌아가거나 심지어 타본당으로 주일미사를 나가는 일도 있다니 과연 그것을 못사는 신자의 신앙부족이라고 간단히 결론할수 있겠는가. 깊이 생각해볼 문제다.
교회안의 빈부의 격차는 비단 신자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반농담으로 들어야겠지만 사제의 인사이동이 있을 때 사제들끼리 인사하는 말중에「영전」이니「좌전」이니 하는말도 들리는데 과연 그런 농담을 하는 기준이 무엇일까 하고 생각할 때 역시 물질적 숫자적인 것이 기준이 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것 역시「가난」을 강조해야하는 이유일 것이다.
교구간의 빈부격차는 참으로 큰 문제인 것 같다. 물론 재정적으로 풍부한 교구는 가난한 교회가 아니고 돈이 없는 교구만이 가난한 교회라고 말할 수는 없다. 풍부한 교구가 돈없는 교구를 보다「적극적」으로 도와주는 풍토가 아쉬워서 하는 말이다.
◆도시본당 예산에 시골지원책을
또 시골에서 태어나 지방신학교를 다녔다는 한가지 이유만으로 일생 동안 돈때문에 고민하는 시골신부생활을 한다면 무엇인가 애처로운 생각이 든다.
교회법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교구의 벽을 넘어서 지방신부와 도시신부가 서로 교대봉사하는 것이 보편적 교회의 모습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본다.
필자는 가난한 사람과 가난한 교회를 도와주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을 한가지 제시하고자 한다. 그것은 도시본당 특히 대도시의 본당은 예산을 편성할 때 의무적으로 총 예산의 상당한 부분을 지방의 가난한 본당이나 교구를 위해서 도와주도록 하라는 것이다. 분명히 말해서 수억이 되는 본당예산에서 기천만원을 따로 뗀다해서 본당운영에 차질이 없다고 본다. 계획된 사업을 하되 연차적으로 한다든가 규모를 줄이면 간단히 해결된다.
◆타교회 사치 비난한 우리였는데
필자는 성당이 초라하기 때문에 비난하는 사람은 못보았고 본당이 너무 사치스럽다고 비판하는 사람은 많이 보았다.
얼마전 까지만 해도 타종파의 교회가 지나치게 사치스럽다고 말하던 가톨릭교회가 이제는 비신자나 신자의눈에 사치스러운 교회로 보여서는 되겠는가 말이다. 나는 가톨릭교회가 돈많은 교회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신자들의 자발적인 성의와 헌금으로 많은 돈이 있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 돈은 반드시 가난한 교회와 나누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어떻게 버림받은 사람을 도와줄수 있겠는가. 필자는「가난」의 신학적의미는 잘모르지만「나눔」없는「가난」은 있을수없다고 확신하면서 교회안에서 서로 나누고 세상의 헐벗고 굶주린 사람과 나누는 교회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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