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성월은 조상들의 순교정신을 본따 신앙을 재무장하고 선열들의 고통과 영광을 우리자신들의 축제로 삼고자 다짐하는 달이다. 그리스도의 몸인 우리는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죽기까지 하느님과 하느님나라에 대하여 증언하신 일생과 가르침을 본따 실천하는 사람이다.「오직 진리를 증언하려고 났으며 그 때문에 세상에 왔다」(요한18ㆍ37)가 죽으신 예수님은 하느님의 뛰어난 순교자였다. 따라서 스스로 신앙을 선택하여 예수님의 몸이된 우리들은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순교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순교에 동참한 무수한 순교선열들을 모시고 있다. 그 님들은 우리처럼 이 땅에서 살으신 조상들이기 때문에 감촉할 수 있는 친근감과 애정을 줄 뿐아니라 우리도 신앙의 증인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과 순교정신을 본받으려는 용기와 신념을 갖추게 하여 준다. 그래서 순교성월은 교회 전례력 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친근한 달이다.
한국교회가 순교자들을 기념하기 위한 축일을 제정한 것이 1926년이었으니 어언 환갑이 되었고 103위가 세계의 성인으로 영광을 받은지도 1년이 넘었다. 그러나 왜 우리에게는 아직도 한국성인이 외국성인보다 낯설고 그들의 전기(傳記)가 떫기만할까? 부지불식간에 고착된 외국 선호사상이 여기에까지만 연된 까닭일까? 예언자는 제고향에서 대접받지 못한다는 그런 상식적인 이야기 때문일까? 왜 한국성인전은 한진부하고 지루한 느낌을 줄까? 이러한 의문과 함께 우리는 순교자성월을 맞이하여 오늘날의 순교자 신심과 관련된 몇가지사항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첫째 우리는 순교자들의 영광을 장고치는데 들떠왔을뿐 그들의 생애와 사상을 깊이 묵상하고 연구하는 작업에 소홀하였던 것이다.
1백 3위의 성인을 맞이하기에 앞서 그들에 대한 구체적인 조사와 신앙 사상의 연구와 함께 충분한 교육이 선행되었어야 할 것이다. 그러했다면 우리는 그들에 대한 친밀감과 깊은 애정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성지순례가 순교성인들이 보여준 신심의 알맹이와 맛을 모르는 변태관광으로 추락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한편 성역화사업이 사치스런 외양위 겉치레에 공경심의 비중을 둔다면 묘지숭배사상이나 무속적 기복신앙을 낳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둘째 순교의 의미는 과거지향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오늘의 시각에서 재조명되어야 할 것이다. 20세기 후반기에 살고있는 우리가 19세기의 조선시대에 돌아가 살수는 없는 것이다. 순교의 의미와 가치는 오늘을 살고있는 우리에게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제시해 주어야한다. 그렇지 못할 때 순교신앙은 광신이거나 서구문화 식민사상의 희생물로 밖에 느껴지지 못할것이다.
셋째 순교신앙은 자기를 포함한 민족의 구원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신심이 내세 지향성을 벗어나지 못하고、여성적이며 무속적이고 자기집단 중심의 현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비그리스도교육적인 신앙으로 오인받기 쉬운 것이다. 그것은 순교정신을 이 사회에 왜곡시키고 경원하게 하는 불상사를 유발하게 된다. 내 가슴의 불길은 이웃과 사회와 현실로 번져나가야 한다. 불은 열을 발산하여 번지기 마련이다.
우리는 이제 이러한 문제점을 생각하며 몇 가지를 제안해보고자 한다. 첫째는 순교신심을 오늘의 새로운 신학에서 연구정리하여 우리의 생활에서 실천할수 있도록 해야겠다. 그래서 오늘날 한국교회의 신심운동을 재검토하고 수입된 신심운동이 아니라 한국성인이 살아온 신심으로 살아갈 때 성인들은 우리와 함께 살아계시게 될것이다.
둘째는 성지순례는 순수한 신심행사가 되어야겠다. 따라서 성지와 관련된 순교자들의 정신에 충분한 사전교육과 함께 기도로 시작하여 기도로 마쳐야겠다.
셋째는 이제 전개된 초대교회의 순교자들에 대한 시복시성운동만큼은 충분한 조사 검토와 그 님들의 정신을 연구하고 신자들을 교육하며 마음으로부터 열정을 가진 시복시성운동이 되어야하겠다.
넷째는 순교자들의 삶을 전기문학형식으로 꾸며 흥미와 영적독서의 가치를 가지고 신도들에게 널리 읽히는 일이다. 그러기위해서는 한국교회사 연구소에 소장된 순교자들에 대한 증언록이 하루빨리 정리 되어야한다.
다섯째는 서조들의 유물과 역사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일이다. 보석은 그 조각까지 보석이다. 유물과 자료를 소중히 아끼는 것은 곧 조상들의 삶을 존중하는 것이다.
끝으로 선열들의 신심에 묻어있는 전통문화를 재발견하는 문화운동이다. 전통문화의 도움이 없었다면 천주교의 신앙이 이땅에서 깊은 뿌리를 내리기에는 더 많은 시간과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아무쪼록 순교자에대한 신심운동이 더욱 널리 보급될 날을 앞당겨 이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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