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는 2백년 역사상 최고로 경사스런 날을 맞이했다. 그날은 한국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성인이 탄생되는 기쁨의 날이었고 영광의 날이었다.
『복자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와 바오로 정하상 및 동료 1백1명의 한국 순교자를 성인으로 판결하고 선언하여 성인 명단에 올려온 교회에서 순교 성인 가운데 공경 받도록 정하는 바입니다』. 5월 6일 오전 9시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베풀어진 1백3위 시성식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백3명의 한국 순교 복자를 성인으로 세계 만방에 공식적으로 선포했다.
1백만여 명의 신자들이 신앙의 물결을 이루고 있는 여의도 광장에서 선포된 이 역사적 사건은 2백년 역사의 한국 교회가 새로운 시대를 여는 하나의 시작을 의미하고 있었다. 한국 천주교회 2백주년 기념을 기해 베풀어진 1백3위 시성식은 순교자의 피로 이어져온 이 땅을 다시 없는 영광으로 빛나게 했다.
이 땅의 빛을 염원하면서 거행된 한국 천주교회 2백주년 기념대회는 1백3위 한국 순교자들의 시성식으로 절정을 이루었으며 2백만 한국 신자들은 죽음으로 지킨 신앙의 위대함을 온 세상에 선포하는 한편 일치와 단결로 이 땅과 이 겨레를 위해 증거하는 삶을 살 것을 다짐했다.
증거하는 교회와 증거하는 삶. 한국 천주교회 2백주년과 1백3위 시성은 한국 교회와 신자들에게 증거하는 삶을 요구했고 그것은 복음화 3세기를 맞는 한국 교회 앞에 새로운 숙제로 던져졌다. 한국 교회 2백년 역사가 순교하는 교회였다면 이제 우리 앞에 열린 교회는 증거의 교회여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그랬다. 한국 천주교회의 2백주년 기념은 증거하는 교회로써 복음화 3세기를 향한 첫 걸음이었다. 4박 5일간, 당시 한국 천주교회 2백주년을 위해 90여시간을 이 땅에 머물렀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순교의 2백년은 지나가고 증거의 시대가 열렸음을 명백하게 보여주고 떠나갔다. 기도하는 순례자로 이 땅을 밟았던 교황은 모든 이와의 화해만이 평화로 가는 지름길임을, 가진 것을 나누는 것만이 소망을 이루는 오직 한 길임을 보여주었다.
그는 사랑만이 모든 악의 세력을 물리칠 수 있다는 사실을, 진리를 증거하는 것만이 그리스도를 따라 사는 삶임을 모든 이의 가슴에 심어주고 이 땅을 떠나갔다. 교황 방한과 시성식 등 한국 천주교회 2백주년 기념 전반을 마무리하면서 당시 한국 주교단은 한국 교회의 과제를 주교단 메시지를 통해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밝힌 바 있다.
주교단은『평화의 사도로서 순교자의 땅을 순례하신 교황님은 보다 인간다운 사회를 이룩하라고 당부하셨다』고 전제하고『아무도 소외되지 않고 어느 누구도 억눌리지 않는 그런 사회, 모든 이가 진실한 형제애로 사는 정의와 평화의 사회를 염원하셨음』을 강조했다.
주교단은 또 교황 성하의 이 가르침을 따라『우리 이웃은 물론 북한 동포를 포함한 온 겨레에 복음을 전해야하는 사명을 새로이 다짐할 것』을 선언한 주교단은『우리의 거룩한 순교자들이 혹독한 박해 속에서 굳세게 진리를 증거했듯이 이제는 우리의 차례라고 강조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이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자』고 촉구했다.
그로부터 10년이 흘렀다. 한국 천주교회는 1백만 명의 신자가 늘어나 외형적으로는 3백만 명을 넘는 신자를 헤아리게 되었다. 성직자는 물론 수도자, 평신도, 교회, 단체, 시설 등등 모든 것이 성장한 오늘 우리는 2백주년 당시 우리의 다짐을 되씹어보지 않을 수가 없다. 과연 우리는 증거하는 모습으로 오늘 우리 겨례 이 민족 앞에 부끄럼 없이 설 수가 있는가.
우리 교회의 시대적 사명으로 선포한 진리와 사랑 정의를 증거하는 일에 우리의 모든 것을 바치고 있는가. 온 겨레와 함께 손을 잡고 전인적 발전과 복음화를 향해 쉼없이 걸어왔는가. 이 물음 앞에 우리가 내어놓을 수 있는 답은 과연 무엇일까.
아직도 우리 시대는 분열과 불신, 증오와 폭력으로 어지럽기만 하다. 교회조차 서로가 믿지를 못하고 형제적 나눔에 인색해지고만 있다. 교회는 날로 커가기만 하는데 신앙인의 모습은 날로 왜소해지는 것 같기만 하다. 그뿐인가. 북녘 교회, 북한 동포들과 하나가 되기 위한 노력도 어쩐지 아쉽기만 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부부가 갈라서고 가정이 깨어지는 위기의 시대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과연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 시대 우리 민족과 더불어 나누고 있는가. 증거하는 교회, 증거하는 삶을 보여주고 있는가.
이 물음 앞에 진솔하게 설 수 있을 때 우리는 한국 천주교회 2백주년 시성 10주년, 그날의 감격을 되찾을 수가 있을 것이다. 증거하는 교회로서 민족 앞에 우뚝 설 수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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