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박한 우리 국민들은 소위「문민정부」가 들어섰을 때 이제는 진정한 민주화, 사회ㆍ경제적 정의의 실현, 분단 극복을 위한 자유로운 논의와 접근이 가능한 역사의 새 장이 열릴 것으로 믿었을지도 모른다. 김영삼 정권이 밀실에서 3당 야합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후퇴를 거듭하였던 군사독재정권에서 벗어났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문민정부에의 기대는 그만큼 컸던 것이다. 그래서 국민들은 이 정권만은 역사의 진보를 위한 최소한의 발걸음을 내딛을 것으로 기대하였다. 그 첫 걸음은 각종 반민주적 법령과 제도, 관행의 개폐여야 한다고 믿었다. 특히 국가보안법은 대통령 자신의 야당 시절 국가보안법의 피해 당사자이기 때문에 당연히 폐지될 것으로 기대하였다.
그러나 그 기대는 예정된 환상이었다. 김영삼 대통령은『야당 시절은 국보법의 피해자였지만 지금은 개정할 수 없다. 양심수 양심수 하는데 폭력범이 양심수냐』며 국가보안법은 그대로 둔 채『국가보안법에 의한 인권 침해의 소지를 없애겠다』며 국가보안법 존속 의지를 공언한 바 있다. 한 술 더 떠서 최형우 내무장관은『사상범은 잠 안 재우는 고문을 해도 좋다』는 폭언도 서슴치 않았다. 또한 박관용 비서실장은『집권해 보니까 보안법이 필요하더라, 보안법이 있다고 일반 국민들 생활이 불편하지는 않지 않느냐』고 발언한 바 있다.
이러한 발언을 종합하여 보건대 이 정권의 국가보안법에 대한 사고나 인권에 대한 관념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김영삼 정권 출범 1년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구속자는 1백39명(94년 2월 25일 현재)이나 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주지하고 있는 바와 같이 국가보안법은 포악무도한 일제 침략주의의 흉검이라고 할 수 있는 치안유지법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며, 민족 분단의 산물로 태어났다. 이 법은 해방 이후 반독재 민주화 운동과 자유로운 통일 논의 및 남북간의 화해 노력을 실질적으로 봉쇄하고, 남북간에는 물론이요 심지어는 남쪽 내부에서마저 적대와 증오감을 조장하는 분단의 법으로 기능해왔다. 이 법이 명분으로 삼았던 경직된 안보논리, 냉전 이데올로기의 무분별한 확산은 독재정권에 대한 비판과 사회경제적 변혁 의지, 민중의 생존권적 요구, 사망ㆍ양심ㆍ언론ㆍ학문의 자유 일체를 억압하는 정권 안보의 도구로써 그 역할을 하여왔던 것이다.
분단 극복을 위한 간절한 민족적 소망도, 노동자와 농민들의 생존권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도, 심지어 참교육을 외치는 교사들의 소박한 열정마저도 국가보안법의 도마 위에 올려져 난도질 당했던 것이다. 그래서 국가보안법은 피 냄새를 짙게 풍기고 있다.
수많은 무고한 학생과 양심적인 국민들이 국가보안법의 서슬 퍼런 칼날 아래「붉은 빛」의 색칠을 뒤집어쓰고 고통 당해야 했으며 정치적 희생자는 고문의 비명과 피의 얼룩을 내뿜었던 것이다.
국가보안법 사건은 명백한 물증보다는 주로 피의자 본인의 또는 공동 피의자 상호간의 진술 증거에 의존하기 때문에 수사기관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백 진술을 받아내고자 하는 강력한 유혹에 끌려 고문을 당연시했던 것이다.
어떤 법학자는『일제시대의 치안유지법 위반 사건의 역사를 뒤집어 놓으면 우리 독립운동사가 되듯이 이 시대의 국가보안법 위반사가 바로 정당한 민족민주운동사라는 평가를 후대 역사가들이 내리지 않겠는가』라고 국가보안법과 민족민주운동과의 관계를 설명한 바 있다. 이 말은 오늘날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국가 권력에 의하여 탄압 받고 학대 받는 수많은 사례들이 얼마나 민족적 정당성 위에 서 있는가를 상징적으로 대변해주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인간, 그 인권에 대한 관심은 교회의 기본적인 의무일 것이다. 우리 교회는 그동안 부패와 부도덕이 판을 치는 이 사회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위해 노력해왔다.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한 사제들이 한국 사회에 있어서 양심의 보루이자 대변자로서, 그리고 명동성당이 민주화의 성지로 불리어졌던 것도 암울하였던 지난 군사독재시절의 인권 유린에 온 몸으로 항거하였던 교회의 모습에 대한 국민들의 믿음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그러나 요즈음은 우리 교회의 모습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국민들의 우리 교회에 대한 믿음에 실망을 주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2천년 전 유다 땅에서 매질 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를 이 땅에 실현하기 위해서, 피로 얼룩진 국가보안법 폐지에 우리 교회가 앞장 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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