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로 접어드는 이 9월에 한국가톨릭교회에 한줄기 시원한 바람이 일어났다. 그것은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한 몇몇 주교들이 가난한 서민들의 생활현장에 잠입하여 짧은 동안이지만 가난한 이들의 삶을 몸소 체험한 것이다.
2박 3일동안의 이 현장체험에 참여하지 못한 주교들은 국외 체류, 신병, 기타개인 사정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가톨릭 교회가 2백주년 행사와 더불어 103위 시성식도 마쳤고 이제 선교 제 3세기에 들어서서 주교단이 보인 가난의 체험은 여러면으로 뜻깊은 일이었다고 평가하게 된다.
그 첫번째 의의로는 가톨릭 교회 주교 직위가 풍기는 귀족적 인상을 해소하는데에 보탬이 된것이다. 교회사학자(敎會史學者) 이브 꽁가르가 다음과 같이 말한것이 있다. 『이제는 교종좌(敎宗座)에서 세속의 먼지를 털어버릴 때가 되었다. 교회에도 오류가 있을 수 있으니 절대적인 하느님의 진리는 불변하지만、 상대적인 차원에서는 오류와 쇄신을 겪어 나가게 된다. 모처럼 신앙심이 깊었던 콘스탄티느스 대제(大帝)가 바티깐에 베푼 호의는 선의에서였다 하더라도 세속의 궁정의식(宮廷儀式)으로 오염시킨 것이다. 이제 가톨릭교회는 가난한 교회로 돌아가야 한다』
과연 의식 무의식간에 가톨릭 주교직위가 풍기는 귄워는 그것이 그리스도를 잇는 성스러운 봉사에 근거하는 것인데도 때로는 세속적 귀족의 인상을 풍긴 경우들이 없었는지 성찰해 볼 일이다.
두번째로 이번의 생활체험은 경직된 관료주의의 위험에서 소탈한 활력의 삶에 발을 내어디딜수 있게 한것으로 볼 수 있다. 가난은 고통이면서 동시에 그 안에 밀도 짙은 인간성과 생동감을 담고있다. 고위 성직자 일수록 이러한 생동감에 때때로 접해야할것이다.
세째로 그리스도교 신앙토착화에 하나의 활로를 마련한 셈이라고도 볼 수 있다. 선교 3세기야말로「토착화」의 사명을 남겨놓고 있는 때이다. 이러한 때에 교회 지도층이 허심탄회하게 밑바닥 대중의 삶에 투신하는 자세를 보여주었다는 것은 훌륭한 모범이 될것이다. 이 현장체험의 기간이 짧았다는 것은 별로 흠이되지 않을수 있다. 어차피 사람들이 각기 걸어가는 길은 어느정도 운명처럼 서로 다르게 되어있다. 요는 이 서로 다른 삶의 사람들끼리 가슴을 열고 사랑으로 만나는 정신이 값진 것이다.
넷째로 지금 한국 사회가 처한 자못 심각한 위기의식에 이 몇몇 주교의 현장 잠입을 연관시켜 생각해 볼 점이 있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양심의 중심세력이라든가 탁월한 지도자를 가지고 있지 못한다.
마땅한 도리대로 말하자면 적어도 「종교」가 이 사회에서 양심의 중심세력으로 위력을 발휘하고 있어야한다.
종교가 당하는 어떤 압박이 있다하더라도 그 부당한 압박을 벗어날 힘을 정당하게 지니고 있어야한다.
그런데 한국 종교계의 실상이 그러하지못한 데에도 아프게 반성할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라 하더라도 은연중에 이 사회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모으고 또 은연중에 이 시대의 양심을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변하는 이가 있으니 그가 김추기경이다. 이와같은 관점은 한 특정 고위성직자에 대한 안이한 평가가 아니고 이 사회의 고난받는 사람들속에 객관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은밀한 통념이다.
이러한 추기경이 이번에 광산촌 광부들의 가난한 삶속에 들어가 함께 노동을 해보았다. 또 한주교는 서울변두리 빈민촌에 들어가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함께 생활해 보았다. 결과적으로 이주교들로서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겸허와 활력과 사랑의 기쁨이었던 것같다. 그리고 이사실은 오늘의 한국사회를 온갖 위기에서 구원하는데에 한가닥 빛이되고 활력이 될수도 있다는 기대를 갖게 한다. 스페인의 작가 가르시아가 쓴 소설「어느 주교님의 휴가」가 바로 이러한 주제(主題)를 제기한 일이있다. 자신의 신분을 완전히 숨기고 한 석제공장(石材工場) 막노동자로 취직한 한 가톨릭 주교의 활동을 그린 소설이다. 그 소설이 이번에 한국가톨릭 교회에서 현실화하였다. 이번의 현장 잠입 과정에서 어떤 고위 성직자는 불가항력으로 신분이 탄로되기도하였고、 모두 짧은 일정속에서 활동하였다. 그러나 이번 몇몇 주교의 가난한 지대 잠입과 생활체험을 한낱 감상적인 화제(話題)감으로 삼아서는 안될 것이다. 오히려 지속적이고 진지한 피정 계획으로 채택될만 하며、 또 피정 이상의 실천적 교회 쇄신 운동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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