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양본당에 온지도 어지간히 세월이 흘렀다. 재미없는 때도 많지만 재미있는 때도 가끔 있는 곳이다.『주께서 여러분과 함께』대신『주께서 빈의자와 함께』하고 싶었던 때는 별로 재미없는 때이지만 이런 일도 있었다. 약 4년전 얘기다. 본당내 어느 집을 방문했는데 얼마후에 부엌에서 술상이 나오고 벽장에서 제사떡을 내왔다.『신부님 오늘밤 우리 아버님 제사인데 신부님만 특별히 떡을 드릴꼐요』하시기래『나는 귀신신자 아비부자 귀신아비라 제사떡을 미리 먹어도 상관없습니다』라고 하면서 떡을 먹었다. 그런데 하얗고 예쁜 주전자로 조그만 소줏잔에 공손이 따라주는 술을 받아서 마시게 되었다. 술맛이 이상했다. 나도 농촌출신이라 웬만한 곡주와 과일주맛은 아는데 이런류는 아닌것 같았고 그렇다고 소주도 아니고 샴페인도 아니었다. 흰 방울이 떠오르는 것을 보면 사이다같기도 한데 색깔이 약간 노랗다. 어디서 많이먹어본 술인데 생각하며 안주를 집었다. 셋째잔에도 잘 생각이 안나서 주인 여교우한테 이게 무슨 술이냐고 물었더니『이거유? 맥주유 한잔 더 드슈』하는게 아닌가? 나는 깜짝놀랐다. 여러분도 생각해 보라. 맥주라면 으례 병으로 맥줏잔에 따라마시는것이 상식인데 주전자에서 소줏잔으로 맥주가 흘러나오리라곤 꿈에도 상상 못했기 때문에 맛을 보고도 잘 몰랐던 것이다. 생각해 보니 치마자락 뒤에 맥주 한병을 사서 숨기고 황급히 집으로 들어가던 생각이났다. 더 재미있는것은 같이 갔던 교우들의 인상이다.
우스워 죽겠는데 웃지를 못하고 웃음을 애써참는 모습이 더욱 우스웠다. 그래도 이른봄이었으니 망정이지. 겨울이었다면 틀림없이 따끈하게 데워왔으리라. 또 다른 얘기-언젠가 봄에 ㄱ공소에 갔다.
우수 경칩때다 아직은 한가한 겨울이라 공소신자 재교육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공소미사를 나간것이다. 미사후에 공소회장님을 비롯하여 교우들이 삥둘러앉은 자리에 막걸리가 나왔다. 회장님이『신부님 오늘은 좀 색다른 안주 맛 좀 보실래요』하며 상 한가운데 있던 뚝배기의 뚜껑을 연다. 들여다보니 김이 모락모락나는 고추장국물속에 만세를 부르며 뻗은 손가락만한 개구리의 시체들이 둥둥 떠있었다. 어려서 개구리뒷다리를 먹어본적은 있으나 통뼈로 먹어보긴 처음이다. 그러나 한번 먹어보려고 한마리를 숟가락으로 떠서 입으로 가져오는데「네가 나를 먹고 잘 살것 같으냐」하고 말하듯 노려보는 것같아 눈을 따악 감고 입에 넣는다. 와지끈 씹을때 몸통에서 튀어나오는 국물맛이란 참으로 이상했다. 그런데도 입에선 딴소리가 나왔다.『그것 참 맛이 괜찮은데』더먹고 싶지않았다. 그런데 신자들은 내속도 모르고 물러 앉았다. 아마도 몇마리 안되는 개구리를 자기들이 먹기 미안했던 모양이다. 우리 농촌교우들은 아직 이렇게 순수하며 그만큼 하느님과 접근하기 쉬운 여건하에 살고 있다. 제발 소값하락 등으로 순수한 이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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