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교육부는 영어 교육의 일대 혁신을 공언하고 나섰다. 읽고 쓰는 독해력 및 문법 중심의 교육에서 듣고 말하기 교육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교육부는 내년부터 사용될 중학교 새 영어 교과서를 독해 및 문법 위주에서 듣기, 이해하기 등 회화 중심으로 전면 개편한다고 밝힌 바 있다.
대학교육을 포함 10년 이상씩 영어를 공부하고 시험이라는 과정을 통해 그 공부를 엄격하게 평가 받았던 우리나라 영어교육이 급기야 실전을 위한 교육으로 돌입하게 되는 모양이다. 일단「죽은 교육」이 아니라「산 교육」을 시키겠다고 하니 대부분의 국민들은 교육부의 새로운 선택과 결정에 기대를 거는 마음이 큰 것 같다.
대학교육은 차지하고서라도 중ㆍ고등학교 6년간「산 영어」를 배운다면 일단 외국인만 보면 덮어놓고 도망가기에 바빴던 우리네 정서가 영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적게는 3년에서부터 많게는 10년씩 영어를 공부하고도 벙어리 귀머거리 신세를 면하지 못해온 우리 교육이 이제사 제 구실을 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어디 그뿐인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면서도 직업상 필요에 의해, 또 진급을 위해 별도의 영어회화 공부를 하느라 시간을 뺏았겨야 했던 풍경도 사라질 수 가 있을 것이다. 반쪽짜리 영어 공부를 보충하기 위해 과외로 버려야 했던 시간과 돈 모두를 절약할 수 있다는 사실은 국가적으로도 유익이 되는 일임에 틀림이 없다.
얼마 전 국내 유수의 방송매체는 우리나라에서 별도의 영어 공부를 위해 투자하는 돈이 국민학교 1천억 원, 중학교 1천5백억, 그리고 고등학교 2천억 원 등 연간 4천5백억 원에 이른다고 보도한 바 있다. 물론 이 수치에는 사회로 진출한 직장인들이 또 다시 배우는 영어회화와 공부에 쏟는 시간과 돈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밝혔다.
사회인들의 영어 과외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 남아야 하는 오늘의 국제 현실에서 볼 때 이미 엄청난 손해를 안고 들어가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것은 곧 출발 지점에 서 있는 주자가 어떤 방법으로 뛰어야 하는지를 모르고 출발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1백 미터 단거리 경주인지, 또는 장애물 경기인지, 릴레이인지를 뛰면서 배워야 하는 주자와 처음부터 어떤 방법으로 뛰는 것인지, 어떤 경주인지를 알고 있는 주자와의 싸움은 그 결말을 보지 않아도 답은 오직 하나일 수밖에 없다.
영어 교육에 대한 교육부의 개혁은 이미 국제화 시대를 살고있는 현실에서 볼 때 상당히 늦은 선택임에 틀림이 없다. 대학교육까지 받은 한국의 유학생들이 외국(거의 미국에 해당하는 사례지만)에서 공부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언어과정에서 받는 평균적인 평가가 중도 아닌 하라는 사실을 모두가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우리의 영어교육은 수십 년이 지나도록 변할 줄을 몰랐다. 몇 년에 한 번씩 바뀌어 제대로 기억조차 나지 않는 교육제도의 변천과정에 비교해 보면 이해가 가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영어교육과 더불어 최근에 다시 떠오른 한문교육의 부활문제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한문교육에 관한 한 나는 엄청난 피해자의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당시 국민학교 5학년 교과서에서 한문이 등장했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한문을 공부했다. 재미 있게 가르치시는 선생님 덕분에 지리하지 않게 한문을 배우던 우리는 어느날 갑자기 교과서에 씌어 있는 한문을 모조리 가려버리라는 지시를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받았다. 어리둥절한 채로 우리는 종이를 오려 낱말마다 괄호 안에 쓰여져 있던 한문을 가려버리고 말았다. 물론 당시 교육정책에 따른 일이었다.
6학년이 끝나가고 중학교 입학시험을 볼 때 즈음하여 우리는 붙인 종이를 다시 떼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것도 교육정책의 일환이라고 들었다. 중학교에 들어가니 역시 한문은 필요없다는 정책이 우리를 기다렸으며 중 3 가까와서야 고등학교 시험에 한문도 나온다는 정보가 흘러나왔다. 부랴부랴 다시 한문시간이 생겼고 우리는 고사성어를 통해 한문을 배우기 시작했다.
가렸다 떼어내고 다시 가리고 하기를 반복하면서 배운 한문이 온전할 리가 없다. 변덕스런 한문교육으로 인한 어려움은 한문 실력이 상당히 필요한 직업 선택에서 그대로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이 같은 어려움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닐 것이다. 그 후로도 한문을 쓸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논란은 계속되어왔고 그 논란의 희생자 역시 계속 배출되어왔기 때문이다.
현재 한문 사용의 필요성은 중국과의 새로운 만남을 통해 자연스럽게 등장하고 있다. 불과 수십 년 사이에 변해버린 국제 정세 속에서 한문은 또다시 풀어야 할 숙제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세계 인구 중 약 25%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글자, 한문은 변화하는 국제 정세와 세계화 등에 발맞추려는 우리의 선택과 맞물려 있게 된 것이다. 변덕스러운 교육정책과 한 치 앞도 가늠 못하는 국제 감각 속에서 부상한 영어교육의 일대 개혁 및 한자 사용의 적극적 도입문제는 기대 속에서도 걱정을 앞서게 한다. 그동안 우리의 교육정책이라는 것이 한 번도,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지도 못했다고 기억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쨋든 영어 교육의 현실화에는 기대를 걸어볼 작정이다. 10년씩 배우고도 문맹일 수밖에 없었던 국제어, 영어를 우리의 후배들이 정복할 날이 멀지 않았음을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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