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은 온순하고 밝으면 좋구요…혈액형은 반드시 O형이어야 합니다. 또한 몸무게는 보통이면 좋고 키는 컸으면 합니다. 머리 색깔은 까맣고 피부는 곱고 흰 색이면 아주 좋겠습니다.
얼굴은 달걀형이면 좋겠고、눈동자는 아주 또렷했으면 좋겠습니다. 코는 약간 콧날개가 서 있었으면 좋겠고 입술은 얇지도 두껍지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웃을 때는 보조개가 있었으면 합니다. 말은 또박또박 잘했으면 합니다.
목은 약간 길었으면 좋겠고 어깨는 넓지 않았으면 더욱 좋겠습니다. 손가락은 길었으면 좋겠고 발은 작은 편이면 좋겠습니다.
나이는 두 살 정도면 좋겠고 사내아이면 더욱 좋겠습니다. 여자 남자 쌍둥이면 더더욱 좋겠습니다. 무엇보다도 부모가 튼튼하고 이십대 초반 부모였으면 좋겠습니다. 부모와 연락이 안 되는 아이면 더욱 좋겠고 이민 간 부모면 더더욱 좋겠습니다.
얼마 전 평소 다니던(한 달에 한 번 이십팔 년 동안 다니고 있음) 보육원을 방문했을 때 삼십대 초반 부부가 보육원 원장님과 상담하는 내용을 들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결혼한 지 십 년이 지났지만 아기가 없어서 입양문제를 상담하러 온 부부…메모해온 내용을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또렷또렷하게 따지듯 이야기하는 뒷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어쩌면 저렇게 자신이 원하는 요구 사항만을 논리정연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한편으로는 똑똑해 보이나 지나치지 않는가? 참 무섭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물론 자신들의 입장에서 여러 사정으로 불쌍하고 딱한 아기를 입양시켜 훌륭하게 키우겠다는 뜻은 고마운 일이다. 어쩌면 저렇게까지 까다롭고 복잡한 청구서(?)를 얼굴 표정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미안한 내색도 없이 이야기할 수 있을까?
『최선을 다해 그런 아기가 있는지 찾아보겠습니다』하시던 원장 선생님의 말씀을 곰곰이 생각하며 집으로 향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특히 수난과 죽음을 통해서 인류의 구원을 이루어 주셨던 십자가상의 그리스도를 섬기며 따른다는 우리、나 자신은 과연 어떻습니까?
우리는 얼마나 많은 생각을 심사숙고하며 살고 있습니까? 우리 주님께… 부모님께… 가장 가까운 이웃에게…대부 대모에게… 심지어는 자녀에게까지 얼마나 많은 것을 요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지난 사순 제4주일 중고생 미사 강론 때의 일입니다.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를 드리자、야훼께서 모세에게 명하셨습니다.『불뱀을 만들어 기둥에 달아 놓고 뱀에게 물린 사람마다 그것을 쳐다보게 하여라. 그리하면 죽지 않으리라』(민수기 21、8). 모세는『구리로 뱀을 만들어 기둥에 달아 놓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뱀에게 물렸어도 그 구리뱀을 쳐다본 사람은 죽지 않았습니다』(민수기 21、9).
중학교에 입학한 지 두 주일밖에 안 된 일학년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부모님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국ㆍ영ㆍ수 학원(한 달 학원비 15만 원)을 다니는 학생이 대부분이었습니다.(48명 중 34명). 주말을 이용해 과외수업을 받는 학생들(과목당 최하 5만원). 그 외 저녁이면 독서실에서 공부하다가 밤 열한 시가 지나서야 귀가하는 학생들….
한 학생당 평균 이십만 원에서 삼십만 원까지 투자(?)하면서「공부」「공부」하는 부모님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구요? 자녀가 한 명뿐입니까? 한 명만 공부시킵니까? 보통 두 명인데 교육비로만 사십만 원 이상을 지출하지 않습니까?
삼십대 중반의 직장인들이 받는 월급이 얼마입니까? 보통 백 이삼십만 원(?) 정도인데… 아파트 청약금、부모님 용돈、내 집이든 전세든 관리비로 최소한 십만 원、주부식비로 이십만 원、문화비 의료비로 오만 원、대충 잡아 얼마입니까? 가장의 출퇴근 잡비는 얼마입니까? 차량 유지비는?
『너를 위해 부모가 입을 것、쓸 것 쓰지 못하고 어떻게 사는지 알기나 해?…일찍 일어나야지…등교하지 전 최소한 한 시간은 맑은 정신으로 공부해야지…일찍 자면 어떻게 해? 네 친구 베드로는 새벽 한 시까지 공부한다고 하더라…』
입학한 지 보름밖에 안 되었는데 새벽 다섯시에 일어난다는 학생、세 번이나 코피를 쏟았다는 학생、국민학교 때가 그리워진다는 학생、얼굴이 부은 건지、뜬 건지 누리끼리한 학생들….
부모님의 심정을 이해하면서도 글쎄? 어떻게 하면 좋지?「목표는 최소한 서울시 안에 있는 대학、아무리 못해도 수도권 내의 4년제 대학」을 써 붙여놓고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리뱀을 바라보며 재앙으로부터 구원을 얻으려 했듯이、하루에도 여러 번 목표를 확인해야 하고、열심히 독려하며 재촉하는 부모님과、잘 따라야 하는 학생들의 입장을 이해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라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TV나 신문、잡지에 소개되는 요즘 세상 이야기를 보면서 그렇게도 많은 것을 타인에게 요구하는 나 자신은 어떻습니까?
타인에게는 매정하리만치 까다롭게 요구하면서 자신의 일에는 지나치게 관대하고 후하지는 않습니까?
다른 사람의 일에『그럴 수도 있겠지?』한다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은 조금은 더 여유와 평화가 있을 것입니다. 그럴 수도 있지…그럴 수도 있겠지….되뇌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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