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대단히 고민하며 생활을 유지해야만 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한국인 천주교회는 작은 단체에서 공소로、그리고 마침내 주임 신부님을 모시게 되는 성장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아름다운 공동체에도 잘 참여하지 않고 생활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그러한 저 자신을 깨드리지 못하고 지냈습니다. 그러던 중 다시 1년이 지난 92년에는 결국 남편이 다니던 피아노 회사는 마침내 완전히 파산하게 되었습니다.
이날은 정말 주님께서 크게 부르시는 날이었습니다. 남편과 나는 주님 앞에 완전히 엎드렸습니다.
그 파산이 있기 두 주일 전、나는 하느님의 인도하심으로 성령묵상회를 떠났습니다. 비록 미국 성당에 다니고 있었으나、15년 전 성모병원에서 투병생활 중에 받아본 심령기도가 그립곤 하였기 때문에 꼭 성령묵상회를 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남편의 직장상태 앞에서 묵상회로 떠나기란 참 힘들었습니다. 미안한 마음에서 엄두를 못 내며 망설였습니다. 이 상황에서 주님의 음성을 어떻게 받아들어야 할지 판단이 서지질 않았습니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남편을 뒤에 두고 피정을 가야만 되는 것인가、또 지금의 우리 처지에 하느님과의 만남을 꼭 그곳에서만 찾아야 되는가. 나는 많은 생각 끝에 남편 옆에서 고통을 함께 나누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리고 봉사자께 못 가는 마음을 말씀드렸습니다.
아! 그러나 이것이 어찌 된 일이겠습니가. 다음날 아침、나는 그 어떤 큰 힘에 사로잡혀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울려오는 용기와 기쁨은 지금껏 느껴온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빨리 묵상회를 가고 싶은 마음에 허겁지겁 짐을 챙기며 시간이 가기를 기다렸습니다.
나의 이 행동에 남편도 같은 마음이었으며、비로소 이것이 나에게 주시는 또 다른 주님의 인도하심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는 사랑하는 하느님 아버지께 찬미와 영광을 높이 드렸습니다.
4박 5일의 묵상회는 시작되었습니다. 첫날은 아름다운 찬양과 기도 소리와 함께 나는 주님을 행한 사랑과 그리고 나의 죄책감으로 인하여 깊숙한 곳으로 숨고 싶었습니다.『주님 이 더럽고 거치장스러운 옷들을 다 벗어 던지고 싶습니다. 또 지금부터의 이 시간들이 헛되이 가지 않도록 도와 주십시요. 그리하여 나에게 구원의 시간이 되도록 해주시며 사랑의 길로 나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시요』나는 분명히 주님께 간절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모든 내 모습을 드러내기 위한 용기는 참 힘들었으며、더구나 내 마음의 저 밑바닥「구석에서부터 들려오는 작은 소리는 점차로 큰 울림이 되어 나를 떠나지 않고 외쳐댔습니다.『네 자신을 지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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