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이 3일 12시 50분경 명동성당에서 부활 대축일 미사를 집전하던 중 괴한에게 봉변을 당한 사건은 적지 않은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40대의 정신질환자에 의해 돌발적으로 저질러진 이 사건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무엇보다 먼저 김 추기경이 크게 다친 데 없이 무사한 것이 여간 다행스런 일이 아니다.
그러나 올해 73세의 고령에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무방비 상태에서 그것도 가해자를 전혀 예상 못한 미사 중 목 뒤에서 그 같은 일을 당함으로써 순간적으로 느낀 놀라움과 심적 충격은 쉽게 진정되지 않을 줄 안다. 추기경님이 참으로 무사하시도록 다함께 기도해야 하겠다.
이 사건을 보면서 왜 공동 집전 사제들이나 복사들이 사전에 괴한을 제지하지 못했는지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만일 그 괴한이 흉기라도 소지하고 추기경을 덮쳤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또 성체나 성혈을 손에 든 상태에서 그 같은 변을 당했다면 성체 훼손의 독성은 어찌 감당할 뻔 했는가?
지금까지는 국내에서 추기경이나 고위 성직자들에 대해서, 그것도 미사 도중 그 같은 불상사가 일어난 적이 없어 방심해온 것이 사실이다. 특히나 지금의 우리 현실은 로메로 대주교가 미사 집전 중 피살된 남미 상황과는 더더욱 거리가 멀다.
그러나 왜 하필이면 부활 대축일과 같은 일 년 중 가장 뜻 깊고 환희 넘치는 대축일에, 그것도 우리 교회의 최고위 성직자이며 우리 교회를 상징해오고 있는 추기경에게, 또 그것도 한국 교회의 심장부로 일컬어지는 명동 대성당에서 대낮에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 하는 점이다.
바로 이 점이 김 추기경의 이번 봉변을 단순한 일과성 해프닝으로 쉽게 넘겨버릴 수 없게 하는 점이다. 이는 우리의 신앙 자세에 어딘가 구멍이 뚫려 있음을 엿보게 한다. 또 이것은 우리 교회가 지나치게 안일과 방심 속에 살고 있지 않는가를 깊이 되새기게 한다.
우리는 교회 역사에서 얼마나 많은 신앙인들이 축성된 성체나 성물ㆍ성당ㆍ성직자들을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도 서슴 없이 바쳤던가를 잘 알고 있다. 그처럼 목숨과도 맞바꾼 수성의 신앙적 열성과 용기가 이번의 독성사건으로 여지 없이 무너져 내린 것은 아닌지 뼈 저리게 반성해 봐야 할 것이다.
따라서 김 추기경이 당한 이번 봉변은 추기경 한 분의 일로 끝날 수는 없다. 그것은 우리 한국 가톨릭 전체가 대낮에 봉변을 당한 것으로 봐야 한다. 그러기에 끈이 풀어져 헐렁해진 신발 끈은 다시 졸라매고 흐트러진 마음 조각들은 가지런히 정돈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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