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그렇듯이 수녀님과 신부님의 이동이 있을 때면 정들었던 분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서운함과 새로 부임하시는 분들을 맞아들여야 하는 새로움으로 희비가 엇갈린다. 올해도 어김없이 정들었던 수녀님께서 갑자기 떠나시니 그 서운함과 섭섭함에 속이 상했다.
그런데 새로이 부임하신 수녀님의 본명을 주보를 통해서 확인하던 나는 너무나 큰 놀라움에 허둥거렸다. 민 발렌티노 수녀님! 얼마나 그립고 반가운 이름인가. 그러나 어쩌면 같은 이름일지도 모르고 그동안 헤어졌던 시간이 10여년이 지난 만큼 얼굴 모습도 희미했기에 수녀님의 인사가 끝났을 때 난 설레이는 마음으로 다가가서『저 혹시 1983년도에 서울 공항동 본당에 계시지 않으셨어요?』하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셨다.『맞죠 민수녀님 저 마리아예요. 왜 가양동에서 지팡이를 짚고서 교리 배우러 다니던 마리아예요』
아아! 그러나 수녀님께선 나를 금방 기억하시지 못하셨는지 그저 두 손만 마주 잡고 자꾸만 나를 들여다보실 뿐이셨다. 그 수녀님과의 인연은 내가 갑작스런 사고로 반신불수가 되어 허둥거리며 나 자신을 학대하고 저주하며 몸부림치던 19세 때의 일이었다.
갑자기 당한 장애라는 굴레에 몸부림치던 나를 신앙의 힘으로 이끌어 주려 무진애를 쓰심에도 불구하고 나는 정신없이 나 자신만을 미워하고 하느님을 원망하며 내 생을 포기해갔었다.
그러나 나를 위해 날마다 기도해 주시고 위로해 주시던 수녀님의 정성에 힘입어 겨우 안정되어 지팡이를 짚고서 교리반엘 나갈 무렵 수녀님께선 떠나셨다. 다른 본당으로 발령나신 수녀님이 서운하고 헤어짐이 서러워서 난 참 많이도 울었건만 그때의 수녀님의 정성으로 신앙에 의지하여 내 육신의 부족함을 이겨나갔고 조금씩 건강해져 결혼까지 하게 되어 이 먼 곳 경상도 땅으로 옮겨 살게 되었다.
이 낯선 땅에서 다시 그 자상하신 민 발렌티노 수녀님을 모시게 되었으니 난 정말로 주님의 은총에 감사드린다. 그 아픔에 절규하던 19세의 어린 소녀가 이제 그때의 수녀님 정성으로 신앙을 깨우치고 육신의 아픔을 벗어나서 결혼까지 하게 된 모습을 다시금 보여드릴 수 잇는 기회를 주신 주님께 진심으로 감사 또 감사의 기도를 드려본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