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이란 시험으로 우열을 가리고 거기에 따라 등급을 매기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진정한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한 자질은 닦는 것이 아닐까? 억압에 굴하지 않고, 옳다고 믿는 바를 소신있게 밀고나가며, 창조력과 개성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자신의 조그만 안일을 위해서 가장 귀중한 자유를 포기하지 않는 그런 사람으로 말이다. 불행하게도 오늘날 교육의 거의 전체를 맡고 있는 학교는 이런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는것 같다.
지금 학교에서는 진정한 인간에의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이 분명하다. 우리들은 너무 많은 규제를 받고 있다. 우리는 친구를 어디에서 만나 어디에서 함께 이야기를 할수 있는가? 아무리 빙빙 휘둘러 봐도 우리의 공간은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이륻은 이미 옛날부터 정해진것들 - 공부 잘하고, 선생님 말씀 잘듣고 교통질서 잘 지키고 인사잘하고, 싸움 안하는 것들이다. 어떤 친구들은 하고 싶은 공부도 못하고 농사일을 도와야 한다든지 돈을 벌어야 하는가 하면, 어떤 친구들은 공부도 1등해야 하고, 피아노도 잘쳐야 되고, 웅변도 잘해야 한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지금 자기가 하는 일에 만족하고있는 것 같지는않다.
어른들은 우리를 어떤 틀에 꽉끼워 맞추려고만 한다. 「그리이스」신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프로크루스테스」라는 악한이, 지나가는 나그네를 잡아다가 쇠침대에 눕혀서, 침대보다 크면다리를 짤라 죽이고, 침대보다 작으면 몸을 늘려 죽인다.
나는 때때로 지금 내가 그런틀에 맞춰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에 흠찔 흠찔 놀란다.
그토록 타고 싶은 자전거를 1등해야 사주신다는 부모님, 적성에는 관계없이 우선 일류대에 들어가야 행세한다고 말씀하시는 선생님, 공부 열심히 해서 뭐하려고 하느냐는 물음에 남보란듯이 떵떵거리고 살겠다는 어린 조카애의 대답이 나를 아찔하게 만든다.
부모님도, 선생님도, 사회에서도 심지어는 우리들 자신조차도 모든 것을 학력에 의해서 척도하는 오늘, 전인교육이란 한낱 공허한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전인교육을 강조하기 위해 올해부터 실시하는 논술고사마저도 논술참고서를 한권 공부하고, 신분사설의 요약 정리 등으로 대처하고 있지 않는가? 결국 한과목 더 추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의 부담을 안겨주었을 뿐이다. 숙제나 준비물을 안가져왔다고 해서『너 학기말에 준법성「다」나와도 딴소리 마』하시는 선생님, 그 말에 꼼짝 못하고 수긍하는 우리들, 그러면서도 1, 2등 하는 친구들은 대개 행동발달상황에 모두「가」를 주는 우리의 현실이다.
단조로운 학습과정과 고득점에의 선호사상은 진정한 인간이되어야하고 또 될수 있는 우리들을 약삭빠른 동물로 전략시키고 있다. 우리 모두가 노래를 잘부를 수도 없고, 운동을 잘 할수 없듯이 우리 모두가 공부를 잘할 수는 없는 것이다. 중학교때 아주 친했던 친구가 실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하자 나를 자꾸만 피할 때, 우리의 우정까지도 망쳐놓은 공부가 밉기조차 했다. 학교에 적응 잘하는 친구는 약삭빠른 동물이 되고, 그렇지 못한 친구들은 그저 들러리가 되거나 문제아가 되어버리는 학교교육제도는 하루빨리 근본적으로 개혁되어야 한다.
며칠전에 신발가게에 갔다. 공중에는 여러 유명 상품들의 선전 팻말들이 흔들리고 있었고, 신발들은 피라미드처럼 진열되어있었다.
맨 꼭대기에는 몇만원씩 가는것들 , 그리고 점점 값이 낮아져 저 아래에는 값싼 신발들이 놓여 있었다. 그 맨 꼭대기에 있는 신발을 본 순간 한 친구가 생각났다. 무척이나 축구를 좋아하는 친구인데, 하루는「미즈노」라는 외국 상표가 붙은 신발을 신고 와서는 자랑을 했다.
아마 그때 그친구는 신발을 귀에라도 걸고 다녔으면 했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체육시간이 되니까 공을 차지 않았다. 좋은신발을 신으면 더 잘 찰 줄 알았는데 그 친구는 그만 신발이 아까워서 운동장만 맴돌았다. 나중에도 공을 찬다는 게 겨우 신발 바닥으로 살짝 미는 게 아닌가! 도대체 발이 신을 위해 있는가, 아니면 신이 발을 위해 있는가? 우리에게 필요하고 유용하게 쓰여져야 하는 것들이 오히려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면 우리는 그것들을 부러워 하거나 가질 필요가 없다. 사실 언제 어디서나 마음껏 활동해야 할 우리들의 신발이 그렇게 사치품화되어갈 필요가 있을까?
지난번「미스 코리아」선발대회를 보았다. 거기 나온 미녀라는 사람들은 웬지 거리감이 느껴졌다. 꼭 서양여자들 같았다. 코도 뾰족하게 나왔고, 쌍꺼풀 수술한 눈은 징그럽게 크고, 얼마 얼마라는 싸이즈와 늘씬한 다리들은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는 다정한 누나나 엄마의 모습은 아니었다. 「미스 코리아」라면 가장 한국적인 참됨과, 착함과, 아름다움을 지닌 여자라야 하지 않을까? 고려시대「둔마리 고분 벽화의 여인상」이 생각난다. 복스럽게 생긴 둥근 얼굴을 가지고 붉은 저고리를 입고 입에는 풀잎이라도 물고, 머리에는 화관이라도 인 듯한 우리의 옛 벽화이다.
진짜「미스 코리아」는 이런 여자라야 하지않을까? 외국상표가 붙은 물건만 좋아하는 것이 지나쳐 우리의 아름다움의 척도까지 외국의 것에 맞추는 것은 누구의 책임인가? 텔레비전을 켜면 쏟아져 나오는 선전들 - 「누가 나이키를 신는가?」철마다 이름을 달리하며 나오는 화장품들, 마치 그 약을 먹으면 만병통치라도 된다는 식의 약선전, 왜녹음기를 선전하는데 아주 짧은「미니 스커트」를 간신히 녹음기로 감추며 춤을 춰야 하는가? 우리는 알게 모르게 세뇌를 당하고 있는 것이다. 냉장고는 이것이 최고라는 식으로, 신발은 저것이 최고라는 식으로, 텔레비전은 어떤 것이 최고라는 식으로…. 더 이상의 다른 것은 없고 오직 그것뿐이라는 얘기들이다.
그리고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아야한다고들 한다. 별로 필요하지 않아도, 남에게 기죽지 않고 살려면 꼭있어야 하고 이미 가진 것도 최신으로 바꿔야 한다는…
꽃들에게 희망을 주듯이 우리는 우리의 이웃들과 사랑을 나누고 평화를 나누어야 한다. 우리는 그저 앉아서 부모님께, 선생님께, 사회에 불평만 해서는 안되리라고 생각한다. 멍청하니「텔레비전」만 보며 무료한 일요일을 보내기보다는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더불어 놀고, 보람있는 일들을 찾아내야 한다.
우리가 본 것을 본 대로 말하고 들은 것을 들은 대로 이야기하고, 느낀 것을 느낀대로 표현하고 좋은 것은 살려나가고 나쁜 것은 고쳐 나갈 수 있어야 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고 어려움이 따르겠지만 우리들만의 것인 순순함과 젋은과 용기가 해결의 바탕이 될 것이다. 서로 대화하고 서로 양보하면서 진정한 인간이 되기 위하여 진정한 인간에의 교육을 위하여 힘찬 전진을 할 때, 그리고 우리가 우리 자신을 찾아 흔들리지 않고 나아갈 때, 우리는 구김살 없는 환한 웃음을 지을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온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향하여 환하게 웃으리라고 확신한다.
(전주 상산고3년 조남규)
<이번주「이런정도는」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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