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성령쇄신운동은 그 역사나 참가자들의 숫자로 보아 이제 소개나 도입단계는 지났다고 생각된다. 가톨릭 성령쇄신운동이 외국선교사에의해 우리가톨릭교회에 들어온지 10년이 넘었고「성령쇄신 세미나」가 74년 우리말로 실시된 후 지금까지 참여한 신자들이 20만명이 넘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현실적인 여건속에 지난 9일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개최된 금년도 성령쇄신전국대회에 주교를 비롯하여 성직자 수도자 및 많은 신자들이 참석하여 성령쇄신의 새로운 전개를 다짐했다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이 같은 행사는 80년 이후 매년 있어온것이지만 작년에 우리교회에서 1백 3위 성인이 탄생했고 제 3세기를 향해 그 첫발을 내딛는 시점에서 이 같은 모임이 있었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성령쇄신운동의 지난날을 돌이켜 볼 때, 열렬한 봉사자나 참가자가 있는반면에 거부반응을 나타낸 일부 성직자나 신자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성령쇄신운동이 우리 가톨릭교회의 신심운동의 하나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성령운동이 성령의 어떤 활동에 초점을 맞추고있어 일반적으로 개인적이고 주관적이 되다보니까「성령세미나」를 받지않은 사람의경우 오해하거나 거부반응을 부채질하는 역할을 했던것도 사실이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성령쇄신 운동의 참뜻을 제대로 널리 알리지 못한데 문제가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국대회에서 두봉 주교나 김창렬 주교가 성령운동의 올바른 방향과 자세를 제시하고 교회내에서의 일치를 강조한 것은 시의적절한 지적이었다고 생각된다.
성령쇄신운동은 말할것도 없이 성령속에 쇄신되어 참다운 하느님의 자녀로서 살려는 신심운동의 하나이다. 특히 제2차「바티깐」공의회의 기본정신의 하나가 최대교회의 정신으로 되돌아가려는데 있었다고한다면 성령쇄신운동이야말로 이에 부합되는 운동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성령쇄신의 체험이 성령강림후 초대교회가 겪었던 체험들과 상당히 일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성령쇄신운동에서 말하는 체험이 성령강림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받은 성령의 힘을 부분적으로 재발견하는데 불과할 뿐이기 때문이다.
물론 성령쇄신운동에서 주의할 점은 몇 가지 있다. 예언의 오용이나 성서의 지나친 확대해석, 다른 사람을 당혹하게 만드는 심령기도나 지나치게 과장된 간증, 치유은사의 과장, 그리고 이상한 행동이나 기도회운영을 노래의 축제처럼 만드는것 등은 경계해야할 일들이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느 신심운동이나 주의할 점은 있게 마련이다.
여기서 새삼 강조하고싶은 것은 성령쇄신운동이란 가톨릭교회의 신심운동의 하나라는 점이다. 이 점만 확실히 인식하고 있다면 쇄신운동에 따른 문제란 있을 수 없다고 본다. 이번 전국대회를 계기로 성령쇄신운동이 한층 깊이있고 활발하게 성장돼 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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