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에 재를 얹고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는 사람의 한계를 새삼스러워 하고 있는 사순시기 첫 금요일 오후였다. 예천 성당의 율리아 수녀님으로부터 다급한 목소리의『사비나야 우리 성당 불났다』라는 전화가 걸려왔다. 이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머리에 재로는 모자라서 잿더미를?
니느웨 사람들과 같은 회개의 요구인가? 오! 주님 예천 교우들이 불쌍해서 어쩝니까! 사제관, 수녀원을 짓는다고 참기름병을 들고 전국을 누빈 고생이 엊그제인데 그들의 눈에 눈물이 어인 일입니까? 살 수가 없어 농촌을 떠날 수밖에 없는 현실의 아픔이 그대로 투영된 농촌 교우들이 안쓰러워 목이 메었다.
본당 신부님의 인사이동과 행사 관계로 몇 주일이 지난 후 예천을 향하는 마음은 무거웠다. 불타지 않고 그대로인 종탑과 반쪽이 된 신부님의 모습이 우리를 더욱 슬프게 했다. 그러나 그곳에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성령의 불꽃이 성전을 불태운 불꽃보다 더 세차게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국민학생의 돼지 저금통과 할머니의 쌈짓돈, 가난한 이웃 본당의 관심, 전국 여러 신자분들의 정성과 기도가 예천 교우들에게 새 성전을 하느님께 봉헌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했다.
『너무 많은 돈은 사절합니다. 적은 돈에도 기죽지 않고 많은 돈에 오만하지 않는, 모두가 당당하게 참여하는 살맛나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게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한 걸음 더 성장하고 성화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대열에 참여하는 영광을 누리십시오』라는 김영필 바오로 신부님의 말씀은 무척 감동적이었다.
역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진실과 사람이며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또한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만 가능한 것이구나 싶었다.
겉보기에는 을씨년스러운 잿더미이지만 그곳에는 당신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부활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기다리고 계심을 느낄 수 있었다.
오! 넘치는 축복이여! 그들의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시고 잿더미에서「이새의 새순」을 키워 주시는 하느님의 섭리는 찬미를 받으소서!
대학생 딸아이가 아르바이트로 번 9천 원과 동행한 후배 부부의 20만 원을 봉헌하고 돌아오면서 지금은 재를 뒤집어쓰고 계시지만 얼마 후에는 새 성전에서 환하게 웃으시는 예수님과 함께 찬미의 노래를 부르기 위해 우리의 정성을 봉헌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신부님 수녀님 교우 여러분 힘을 내십시오.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는데 무엇이 두렵습니까? 모든 근심 걱정 고통까지도 그분께 드리고 우리는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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