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한국 사회를, 뒤흔들 만큼 유명했던 영화가 있다.「미워도 다시 한 번」. 바로 그 영화의 제목이다. 현재 30대 후반의 한국 사람이라면 거의 모두가 기억하리라 생각되는 영화「미워도 다시 한 번」은 눈물 빼는 영화로는 당시 단연 1위를 차지할 만큼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했던 영화로 기억되고 있다.
당시 신문 지상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이 영화의 평들이나 관련 기사 내용을 더듬어보면 대충 다음과 같았던 것으로 기억된다.『눈물 없이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영화』『전국의 수백만 여성팬들의 눈물을 몽땅 뽑아버린 영화』. 실제로 이 영화를 보고 나오는 관객들의 눈은 모두 붉게 충혈이 되어 있었다고 신문들은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이 영화의 유명도는 같은 제목의 영화가 2탄 3탄 연속으로 제작되었다는 사실이 입증해 주기도 한다. 속이란 접두어가 붙은 채 계속 이어진 영화「미워도 다시 한 번」의 빅히트는 이 영화가 당시 우리네 삶의 정서를 그대로 반영해 주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가족간의 끈끈한 유대, 절대 떨어질 수 없는「모정」같은 것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 영화가 갖는 본질적인 문제점은 잠깐 접어두고)
영화,「미워도 다시 한 번」은 당시에도 또 지금에도 흔하디흔한 남녀의 삼각관계가 내용의 중심을 이룬다. 정확한 기억인지 자신은 없지만 대충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기억된다.『한 여자가 부인이 있는 남자를 사랑하고 아이를 낳게 된다. 유부남이었으므로 두 사람은 헤어질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 그리고 아이는 장래를 위해 남자의 집으로 보내지게 된다. 결국 생모와 아이는 이별하게 되고 이 이별 장면에서 아이와 생모는 안타까운 몸부림을 펼치게 된다』.
최근 TV의 흘러간 영화 프로를 통해 가끔 방영되는 이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눈물 짜내기의 표본영화 같은 생각이 눈물보다 앞서 들곤 한다. 지금도 쉽게 접하는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내용 전개는 마치 신파처럼 느껴지고 만다. 어쩌면 이 한편의 영화는 당시와 지금, 우리 한국 사람들의 엄청난 정서 변화를 영화로써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국인의 정서 변화는 얼마 전 이혼가정의 아이 양육문제에서 실제 상황으로 불거진 바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이혼율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수치를 통해 드러나고 있지만 이혼과 관련, 최근의 보도는 우리의 눈과 귀를 의심하게 할 정도까지 되었다. 목숨까지 걸 만큼 치열했던 자녀 양육권 차지를 위한 다툼에 이상기류가 생긴 것이다.
이혼하는 가정의 아이 양육문제가 가장 중요한 문젯거리로 떠오르기는 과거나 지금이나 매 한 가지지만 이 문제의 접근 방법은 180도 달라졌다고 언론은 보도하고 있다. 이혼할 때 한사코 아이를 맡겠다고 나서는 것이 과거 논쟁의 중심이었다면 서로 아이를 맡지 않겠다는 것이 오늘날 이혼부부의 현실이라는 것이다.
어느 한쪽의 부모도 맡지 않는 아이는 당연히 유아원, 고아원으로 보내지고 졸지에 아이는 고아 아닌 고아 신세가 될 수밖에 없다. 이 세상 어느 나라보다도 유난한 모정, 유별난 가족관을 지닌 민족으로 평가되어온 우리의 전통적인 가족 개념은 이쯤 되면 무색해지고 만다.
가족보다는 개인이, 아이의 장래보다는 자기의 앞날이 보다 중요한 선택으로 변화되고 있는 이 같은 의식 구조는 최근 아이의 내신성적 조작을 위해 불의까지도 서슴없이 행하는 부모들의 선택과는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피와 살을 나누어준 자식조차 내팽개치는 부모상, 자녀를 위해서라면 가진 재산 모두를 바치고 심지어 부정까지 저질러도 좋은 부모상, 어느 것이 우리의 실체인지 분간이 가지를 않는다.
오늘 우리 사회의 이 같은 모습은 가정과 가족이라는 개념에 이상기류가 흐르고 있는 현실을 정직하게 반영하는 응답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쉽게 태아를 포기하는 풍토는 부모가 가져야 할 근원적 의무조차 저버리는 분위기를 낳았고 아이에 대한 손쉬운 포기는 부부의 갈라짐 역시 손쉽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부부가 갈라선다는 것은 가정이 깨어짐을 의미한다. 깨어진 가정의 아이들에겐 가정이라곤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급증하는 이혼율과 정비례하듯 버려지는 아이들, 아무런 대책 없이 그냥 버려두기엔 이들의 미래가 너무나 안타깝고 우리의 미래는 절망적이다.
아무 조건 없이 보호 받아야 할 아이들에 대한 가정의 이 같은 무책임은「가정의 해」를 무색케 하고 있다. 유엔과 세계 교회, 그리고 한국 교회가 모처럼 설정한「가정의 해」는 우리 교회가 가정들이 처한 위기 상황에 보다 구체적인 자세로 접근하도록 요청하고 있다.
마침 한국 교회는 3월 19일 성요셉 축일을 기해 주교단 공동 사목교서「사랑과 생명의 공동체인 가정을 위하여」를 발표했다. 다소 늦은감은 있지만 한국 교회 최고 장상들의 가정의 해 공동 사목교서는 가정문제에 대한 한국 교회의 적극적 의지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자못 기대가 크다.
아울러 우리 교회는「미워도 다시 한 번」가정을 돌아보고 자식을 생각하는 지난날 우리의 정서를 되살리는 일에도 앞장을 섰으면 좋겠다. 가정이 없으면 당연히 교회도 없기 때문이다. 교회는 이 점을 명심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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