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미사를 마치고 모처럼 틈을 내어 안동 생명 공동체의 농촌 공동체 모임에 참석하러 함창에 갔다. 늦게 도착하였지만 지난 2월의 평가와 계획을 토론하는 과정을 보면서 자연에 일치하는 농민들의 품성을 느꼈다. 사람들이 어리숙하고, 말이 적고, 좀 모자라고, 서툰 느낌을 받지만 이 모임에서 나의 마음은 한없이 편해졌다. 자연에 돌아온 기분이다. 도시 사람들의 모임에 가보면 말도 많고, 또한 잘 하며, 머리 회전이 아주 빨라서 모두들 얼굴에 철판 깐 사람처럼 느껴진다. 상대편 말의 속셈이 무엇인지 판단해야 하기 때문에 마음으로 늘 긴장해야 되고, 그래서 늘 불안하다. 도시 사람들은 자본의 논리에서 말을 하지만, 생명 공동체 모임의 사람들은 마치 고향에 온 것처럼 한없이 마음 편한 말만 한다. 이야기의 내용도 메주나 볍씨, 곶감, 감식초 등 자연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는 이날 밤에, 그렇게 톡 쏘는 감식초를 처음으로 먹어 보았다.
사람의 품성은 역시 흙인가 보다. 시멘트 위에 사는 도시인들은 자신도 모르게 자연의 품성에서 멀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함창본당에 계시는 조창래 신부님은 이 공동체를 농민들과 함께 만들었고, 지금도 대표이시다. 조 신부님의 표정에서 자연에 일치하는 사람의 품성을 느꼈다. 그날 밤도 이 생명 공동체의 가치관을 조 신부님은 세 가지로 얘기해 주셨다. 농민들이 이 가치관에서 벗어나려고 할 때마다 조 신부님은 우리가 이 운동을 시작한 것은 돈 때문이 아니라 가난하게 살고, 고생하면서 밑지는 장사를 하려던 것이 아니었는가 하고 지적하지만, 농민도 자본주의 시장경제 속에 사는데 이것은 큰 십자가가 아닐 수 없다. 밑지기는커녕 경쟁에서 이기고, 또한 국제 경쟁력에서도 이겨서 부자가 되어 편하게 살고 싶은 것은 농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윤을 최대로 올리기 위해서는 대량 생산을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농약도 사용해야만 하는데, 그리고 다들 그렇게 하고도 잘 사는데 왜 이 공동체만은 유기농을 고집하여 어렵게 사는지? 그 이유를 알고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지난여름 잡초가 무성했을 때 제초제를 한 번만 휙 뿌리면 될 것을 굳이 멍든 손으로 일일이 논을 매는 이들의 농심을 도시 생활자는 제대로 깨달을 수나 있을까?
가장 밑진 장사를 한 사나이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함창을 떠나오면서 나의 길을 생각해 본다.「성공을 위해서 이 운동을 한다면 실패이고, 어차피 이 운동은 밑지는 장사라고…」. 11가구 농촌 공동체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옥산, 풍양, 죽동, 쌍호, 도봉산, 물미, 구천, 솔뫼, 만리산, 왕실, 그리고 안계 공동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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