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미술가회가 주관하는 교회 건축에 관한 세미나에 따라 갔다. 한마디로 한 20년쯤 전에 이런 모임을 가졌더라면 오늘과 같은 괴상한 교회 건축이 우리를 슬프게 하지는 않았을 것을 하는 마음 간절하였다. 한 가지 자위한 것은 건축가와 건축주의 문제는 비단 우리 박물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교회 건물의 주인이 주님이면서 살림을 사는 관계자 그리고 신자들이라고 생각한다면 박물관 건축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사회의 공공의 건조물인데 주변에는 도무지 관심을 두지 않고 혼자 잘나서 혼자 우뚝하니 더더욱 괴상한 건물이 될 수밖에 없다.
역사의 기록에 따르면 전성기의 신라는 기와집 추녀가 비를 피할 만큼 이어져 있고, 금으로 장식한 저택과 불전이 하늘의 별처럼 총총하고 탑들이 기러기처럼 가득하다고 하였다. 그럴 때 황룡사의 구층탑이 어우러져 장엄하게 보이는 것이지 오늘날 경주의 허허벌판에 구층탑만 복원하였을 때 그것은 괴물이지 아무 것도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그것을 복원하지 못해 안달인 것이다. 우리의 조상은 주변과 조화를 이루는 것을 으뜸으로 삼았는데 어느새 우리는 오직 하나만이 우뚝하여 잘난 체 하는 개인의 집합체가 되고 말았다. 이렇게 해서 결국은 협동하고 조화할 줄 모르는 성품이 되는 듯하여 서글프기 짝이 없다.
우리 국립중앙박물관은 반 세기 동안 제 집을 지녀보지 못하였다. 따라서 간절한 꿈은 제 집을 지니는 것이었고, 그 집은 집 주인이 원하는 것이기를 바랐었다. 박물관 건축의 특이함이란 주인이 많다는 사실일 것이다. 박물관 살림을 사는 직원도 주인이고, 건물을 설계하는 건축가도 주인이요, 박물관 자료도 주인이다. 또 이용하는 관람객도 중요한 주인이다. 이 네 주인에게 알맞는 건조물이란 그렇게 단순한 일이 아니다. 그러기에 박물관 건물은 건축가라면 한 번은 짓고 싶어하는 것이나 우리의 각 지방 박물관들은 그 건축을 이룩한 다음 어느 한 번도 조용한 적이 없었고 어느 누구도 만족해하지 않았다. 말끝마다 전통이다 전통적이다 하면서 고대 건축을 늘이거나 줄여서 갖다붙이고는 전통이라 한다. 게다가 비가 새는 건물임에야.
교회 건축도 박물관 건축과 마찬가지로 모두 주인이 많은 집이라는 데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과 그 집들이 주인의 뜻을 무시하고 이룩되거나 어느 한쪽 의견에 치우쳐 만족스러운 건물이 되지 못했다는 사실은 매우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는 건축가 자신들이 가장 먼저 인식해 주어야 하지 않았을까? 이런 건물이니 주인이 바뀔 때마다 마음대로 뜯어고쳐서 더욱 괴상한 것이 되고 만다는 말에도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째 꼭 같은가 싶기도 했다.
이유야 어떻든 전임자가 한 일을 뜯어고치고 깔아뭉개는 경우는 비단 건축에서만이 아니라는 데 문제가 많다는 것도 실감하게 된다.
30년만의 문민정부라고 어지간히 외쳐대는데 군사정부가 아니라서 문민정부라 한다면 그것은 외람된 일이다. 문민정부란 지금까지의 군사정부와는 달라야 한다. 좀 더 문화적이어야 하고 좀 더 민주적이어야 한다. 그런데 어떤가? 문화를 소중히 하는가? 만사가 민주적으로 이룩되고 있는가? 아무리 대통령 중심제라 하지만 어떻게 대통령의 한마디로 막중한 국립박물관이 헐려야 하고 박물관의 소중한 국가적 문화 유산은 지금까지 겪어온 유전의 역사를 한 수 더 떠서 이전에 이전을 거듭해야 한단 말인가? 그 건물이 비록 일제의 잔재라 할지라도 건물만 볼 것이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를 감안하여 민주적인 절차를 밟아야 하지 않는가? 그 건물에는 무려 4백억에 가까운 돈을 들여 박물관으로 전용하였다. 이제 임시로 아무 데나 나앉으려 한다 해도 또 그만큼의 돈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도 지금보다 말할 수 없는 악조건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또 다시 제 집은 없어진 채.
건축가와 집 주인의 차분한 대화가 이룩된 후에 지어진 집이라면 별 탈이 없을 텐데 순서를 바꾸어 계획하고 밀고 나가노라면 중간에 고쳐야 할 일이 생기게 마련이고 그것은 반드시 독단적으로 행하여지는 것이 상례가 되어 버렸다. 건축가는 자기의 집이 아니라 하고 집 주인 역시 자기 집이 아니라 한다. 주인 없는 집이니 아무렇게나 뜯어고치려는 마음이 쉽게 생기는지도 모른다. 말이 없으신 주님과 말을 할 줄 모르는 박물관 자료들만 불편한 곳에서 고생을 하고 있을 따름이다. 다만 교회의 말없는 주인은 아무리 잘못 모셔도 참으시지만 박물관의 말없는 주인은 조금만 잘못해도 병들고 상하는 게 다를 뿐이다.
박물관 건축이건 교회의 건축이건 결함 투성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들의 역사요 거울이다. 제발 그런 건물이라 하여 탕탕 부셔 버리려 하지말고 보존하여 두자. 아무리 귀엽던 병아리도 잘생긴 수탉이 되려면 껑충하고 볼품 없는 중닭의 모습을 거쳐야 한다. 그렇다고 그 못생긴 중닭을 없애버리면 잘생긴 수탉으로 성장할 수 없다. 아프고 부끄러운 과거일수록 잊지 말고 상기시켜 가면서 그 역사를 교훈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역사는 왜곡도 말살도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며 또 그렇게 되지도 않는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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