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20도의 혹간, 소리만 들어도 금방 날아갈 것 같은 강풍이 몰아치는 한 겨울의 새벽. 따뜻한 이불속을 빠져나오기까지는 수차례의 결심이 필요했다. 떨리는 몸을 가누며 얼음장보다 차가운 놋쇠종을 두드린다. 1분 1초라도 늦게 종을 치는 날에는 교장신부의 벼락 같은 호통을 받으며 식당 한구석에 꿇어 앉아 맨밥을 먹어야 했다.
이름하여「종지기」. 그옛날 신학생들에게 시간관념을 일깨워주며 극기를 키워주던 신학교의 고통과도 같은 벼슬(?)이었다.
이와 같이 엄격한 벼슬의 역사와 함께 가톨릭대학도 1백살의 나이를 먹었다.
지난 10월 28일은 이땅에 체계적으로 성소의 씨가 뿌려진지 1백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동안 그 힘겹고 어려웠던 벼슬자리를 거쳐간 대부분의 신학생들이 훌륭한 사제로 활동하다가 일생을 마쳤으며 아직도 그 자랑스러운 이력을 지니고 활동중인 사제도 있다.
오기선신부는 그의 저서「다시 태어나도 사제의 길을」에서 신학생시절 종지기를 맡았던 경험이 훗날 사제로 서품되고 78세의 고령이된 지금까지도 철두철미하게 시간을 엄수해 나가는 생활신조를 낳게 했다고 술회한다.
이렇듯 수많은 애환을 간직한채 1백년의 역사동안 신학교의 여명을 밝혀왔던 종소리도 세월의 흐름속에 점차 빛을 잃어갔다.
70년대 초반 나라 구석구석에 불어닥친 현대화의 물결은 어느덧 낡은 놋쇠소리를 자동타이머(시간조절장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로 변신시키고 말았다.
이제는 시끄러운 놋쇠소리에서 신학생들을 해방시켜주고 대신 감미로운 멜로디를 선사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잠과 추위를 이겨가며 신학교의 새벽을 밝혀온 종지기들의 어려움이 있었고 또 그 종소리에 잠을 깨어 예비사제로서의 힘찬 아침을 시작했던 선배신학생들의 낭만이 있었기에 사라진 종소리의 여운은 더욱 더 아쉬움을 남긴다.
비록 놋쇠소리가 음악소리로 바뀌어야할 현대화의 필요성이 절대적이었다 하더라도 어려운 시절을 겪어온 선배들의 종소리에 서린 낭만은 신학교 교육에 있어 하나의 역사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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