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누워 계신 산비탈 언덕엔 사시사철 바람이 붑니다.
언덕 저 아래로 북녘 땅을 흘러내려온 임진강과 예성강이 한강으로 하나 되고, 그 뒤엔 황해도 연백평야며 산들이 무연히 펼쳐져 있습니다.
나이 서른에 노부모 평양 집에 두고, 걸어서 38선 넘고 열차 승강구 손잡이에 매달려 남으로 내려왔다가 영영 고향에 못 돌아가고만 실향민 묘역답게 지난 한식 때도 바람은 저 건너편 무연한 산줄기와 강들에서부터 세차게 불어왔습니다.
함경도 북쪽 끝 두만강 국경 마을 종성에 노모를 두고 내려온 내 친구 아버지 김규동 시인은 생전에 ‘두만강에 두고 온 작은 배’라는 시를 썼습니다.
“가고 있을까/ 나의 작은 배/ 두만강에
반백년/ 비바람에/ 너 홀로
백두산 줄기/ 그 강가에/ 한줌 흙이 된 작은 배”
이제 북녘에 두고 온 어머니를 오매불망 그리던 저 이들도 다 세상을 뜨고, 남에서 낳은 그 아들들이 환갑을 넘겼습니다.
정전 65년, 이제 비로소 전쟁이 완전히 끝이 났다는 종전 선언을 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자는 논의가 남북과 미, 중 사이에 시작되고 있습니다.
6·25전쟁에 남북뿐 아니라 미국, 중국이 당사자로 되어 있다는 건 이 전쟁이 세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세력들 간의 대리전임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러니 문제의 해결도 남과 북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안 되는 고약한 덫에 걸려있는 셈입니다. 북은 우리와는 달리 전시 지원국이던 중국이나 러시아의 입김에서 나름 어느 정도 벗어나 있지만, 우리는 남북이 분단되어 있는 한 정치, 경제, 군사, 문화 모든 부문에 걸쳐 미국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형편입니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제4조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미국이 그 군대를 한국영토에 배치할 권리를 한국은 ‘허여(許與)’하고 미국은 이를 ‘수락’한다고 하여 한국의 미군주둔 요청을 미국이 선심 써서 받아준다는 식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집회 때마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들고 나서는 노인들이 신처럼 받들어 모시는 바로 그 박정희 대통령은 1972년 북의 김일성 주석과 7.4 공동성명을 채택하면서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평화통일 3대원칙에 합의했습니다. ‘미국 등 외세를 배제하고 자주적으로 평화롭게 민족 대단결을 하자.’ 걸핏하면 평양을 폭격하겠다고 겁을 주는 미국으로서는 기겁을 할 내용입니다.
이 평화통일 3원칙은 그 뒤로도 보수 노태우 정권이나 진보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 그대로 이어져 왔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의 6.15 남북공동선언이나 노무현 대통령의 10.4 공동선언에서는 ‘우리 민족끼리 정신에 따라 통일을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간다’는 표현에까지 나아갔습니다.
박 대통령 때부터 시작된 이런 ‘우리끼리’가 과연 가능한 일이긴 한 걸까요?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만 아니겠지요. 그래서 현 정권은 애처로워 보일 정도로 미국과 중국을 추어올리고 그 비위를 맞추면서 남북 화해를 모색합니다.
다행스럽게도 남과 북, 미국과 중국이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에 그 어느 때보다도 의견 접근을 보고 있는 듯합니다. 남북이 평화공존 단계를 거쳐 마침내 하나가 될 때라야 우리는 비로소 완전한 자주 독립국가를 내외에 선포할 수 있을 겁니다.
구약 시대 강대국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간 에제키엘은 유다 민족의 해방과 유다와 이스라엘로 나뉜 남북왕국의 통일을 예언하며 노래했습니다. ‘마른 뼈와 뼈가 서로 다가서고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올라오며 그 위로 살갗이 덮히고 숨이 불어넣어지리니.’
그렇습니다. 임진강, 예성강, 한강을 바라보는 언덕에 세찬 바람맞으며 누워 계신 우리 아버지의 마른 뼈에, 두만강에 두고 온 작은 배를 그리며 모란공원에 누워 계신 친구 아버지의 마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고 숨이 불어 넣어져 평양으로 종성으로 힘차게 달려갈 날이 반드시 올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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