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알베르트 슈바이처(1875~1965)의 자서전적 반생기인「나의 생애와 사상」을 읽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 1931년에 출판된 이 책은 어린 시절부터 56세까지의 생애 전반에 걸친 그의 신학, 철학, 종교에 관한 자기 이야기이다. 무엇보다도 그의 예언적 통찰력과 삶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나처럼 생명운동을 하자고 떠드는 것보다는 슈바이처처럼 용기 있는 행동이 필요한 시대이다.
그는 어린 시절의 어머니의 기도를 이렇게 기억했다. "나의 어머니는 머리맡에서 늘 인간에 대해 기도하였는데 왜 인간을 위해서만 기도를 할까? 왜 동식물을 위해서는 기도하지 않는가?" 우리는 슈바이처의 이러한 지적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사실 우리의 기도는 철저히 인간 중심적인 기도이다. 우리는 이제 저 우주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생태학적 기도가 필요하다. 상처 받은 지구를 위해서도 기도해야 되지 않을까? 오염된 강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한다.
그의 유명한 말인 "생명에 대한 경외"라는 말도 1915년 9월 배를 타고 온고모라는 마을로 가는 중에 문득 머릿속에 떠올랐다고 한다. 그는 그런 말을 예감한 적도, 구하려고 애쓴 적도 없었다고 자서전서 밝히고 있다. 그로부터 그는 세계 긍정 및 인생 긍정, 그리고 윤리가 모두 내포되어 있는 이념에 도달했던 것이다.
인간의식의 가장 직접적인 사고도 슈바이처의 표현의 의하면 "살고자 하는, 생명에 둘러싸여 있는, 살고자 하는 생명"즉 "생명 의지"이다. 나의 생명 의지와 타인의 생명 의지를 긍정하는 것이 선이고 악은 생명을 파괴하고, 저해하고 억누르는 것이다. 슈바이처는 이것이야말로 도덕의 사고 필연적인 절대 원리라고 생각한다. 그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생명에 대한 외경을 확대하고 있다. 우리는 이 점에 대해서 우리 교회가 받아들여야 된다고 본다. 슈바이처는 종래의 윤리가 도덕 인간의 태도만을 문제시했다는 것은 실로 잘못이라고 지적한다. 실제로는 세계 및 자신의 영역에 들어오는 모든 생명체에 대하여 인간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일까. 그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하면서 인간의 생명이든 동ㆍ식물의 생명이든 상관없이 모든 생명을 헌신적으로 도와줄 때 인간은 비로소 윤리적일 수 있다고 단언한다. 지금의 윤리신학은 절름발이 신학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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