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에다 이삿짐을 가득 싣고 다른 동네로 떠나가면서 전송하는 사람들에게 “이 동네는 사람이 살 곳이 못 됩니다. 이 동네 사람들은 모두 무식하고, 가난하고, 예절도 모르고, 욕심이 많고, 싸움질만 하고… 그래서, 아이들의 교육에 지장이 있을 것 같이 이 동네를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라고 말했다.
한편, 그날 같은 시간에 다른 사람은 이 시간 그 집을 사서 이사해 들어오면서, 새로 이사 온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 동네 사람들이 가난하고 배우지 못하고, 앓는 이가 많고, 불행하게 산다는 소문을 듣고 그분들의 이웃이 되어 볼까 하여 이 동네로 이사 오기를 결심하였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동네를 떠나는 첫 번째 사람은 좋은 이웃을 찾아서 이사를 가는 것인데 아마도 모르긴 하지만 그는 자기가 바라는 좋은 이웃을 영원히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 좋은 이웃을 찾아 끝없이 헤매거나 실망의 쓴 잔을 마시게 될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두 번째 새로 이사 온 사람은 짐작컨대 어디를 가든지 좋은 이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누가 나의 좋은 이웃이 되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충족될 가능성이 없지만, 내가 누구의 이웃이 되어 주기로 결심한 사람에게는 어디를 가든지 좋은 이웃이 될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첫 번째 사람의 것과 같지 않을까? 우리 신앙인들도 마찬가지일까?
많은 사람들의 생활 철학에는 자신들의 불행의 원인이 나쁜 환경과 이웃을 잘못 만나서 발생했다고 생각한다. 자기 자녀도 이웃의 잘못된 친구들을 사귀어서 문제아가 되었다고 한다. 이웃 나쁜 아이만 탓하고 자기 아이에게는 탓을 돌리지 않는다.
“누가 내 이웃인가?” 내가 다른 사람의 좋은 이웃이 되어 주기로 결심하지 않는 한 내 이웃은 없을 것이다. 자기중심으로 생각하면 결코 좋은 이웃을 만날 수 없다. 지금은 사순절이다.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하느님의 질서에로 길들이는 때이다.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마태오 7, 12) 신앙인의 황금률인 것이다. 그런데, 「한마음한몸」 운동을 소리 높여 외치던 우리 교회는 이웃을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했는가? 좋은 이웃이 되어 주기 위해 우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 속에 투신했는가? 본당 관할에서 주민들과 어우러지는 공동체로 그들의 어려움을 껴안고 그들의 고뇌의 십자가를 짊어져 주는 교회로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자기들만 위해서 일주일에 몇 번 쓰지 않는 본당의 그 큰 건물들을 바라보는 주민들의 눈길 속에서 무엇을 읽을 수 있을까? 본당 교육관을 지으면서도 지역 주민들과 어우러질 수 있는 설계를 생각지도 않으며, 자기들만 사용하기 위한 폐쇄된 사고방식 속에 갇혀 있는 현상은 집단 이기심에 빠져 있다는 증거는 아닐는지?
교회 공동체가 지역주민 안으로 육화해 들어가야 한다. 그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병자들을 돌보는 호스피스사업이다. 도시 빈민들의 자녀들이 학원에도 갈 수 없는 초·중·고의 공부방을 개설해서 도와주는 일, 맞벌이 부모의 자녀들 아가방 운영, 골목유치원, 그 외 오늘날은 집안 가족 모두가 출근하기에 노약한 노인들을 돌봐줄 수 없기에 탁노소를 운영하는 것도 바람직하며, 걸식 노인들은 많지 않지만 집안에 혼자 덜렁 남아서 점심마저 챙겨 먹기 어려운 노인들 밖에 소일하러 나왔다가 집에 가기는 싫고 점심 값이 없어 점심을 거르는 노인들을 위한 무료 급식소도 경로정신을 불러일으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세계 가정의 해를 맞이하여 독거노인들을 위한 배려와 소년 소녀 가장들을 위한 항구한 지원을 주는 일이라든가 태교나 영아·육아·청소년 심성 교육 문제도 신자나 지역 주민 모든 공동체를 위한 프로그램을 해볼 만하다. 특히 우리 교회에서는 미취학 영아, 유아 교육을 위한 교재나 그들의 부모들에게 종교 심성교육을 하도록 배려하는 것이 전무하다. 영아나 유아 때 종교 심성이 거의 70퍼센트 형성된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는 교회가 전혀 교재나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지 않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영아·유아(미취학 아동 태아 교육까지 포함) 신앙 교육을 위한 교재나 그 부모들을 교육하는 문제들을 심도 있게 연구하는 「영아·유아 신앙교육연구소」가 하루 빨리 만들어져야 한다.
인간의 삶을 참으로 보람 있고 뜻 있게 만들어 주고 기쁨과 행복감을 맛보게 해주어 인생은 살 가치가 있으며 그 인격은 존엄한 것이라는 생활 철학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이웃이 되어 줄 것을 결심하고, 삶의 폭을 넓히며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은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데 있다.
우리 주변에는 도움의 따뜻한 손길을 기다리는 불행한 사람들이 많다. 바로 그 사람들이 우리네 이웃이 아니겠는가? 내 이웃이 누구냐고 묻기 전에 내가 타인의 이웃이 되어 줄 때, 내 이웃은 존재하는 것일 게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 (마태오 25,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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