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0일 대학입학 학력고사가 시작되면 1월 중순에 있을 각 대학의 신입생선발시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대학 입시에 관심을 쏟게 될것이다. 벌써부터 여러신문에서는 금년도 학력고사에 관한 기사를 심심치 않게 다루고 있다.
이맘때가 되면 생각나는 일이있다. 20여년전의 일이지만 필자가 모여고에서 교편을 잡던 시절의 실패담이다. 교육경험도 많지 않은 내가 고 3담임을 맡게 되었다. 진학지도 경험이 없는 나는 학생이 선택하는 대학에 무조건 입학원서를 써주었다. 대학에 진학하는데는 당연히 학생자신의 선택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하고싶은 공부를 자기가 선택한 학교에서 하는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 많은 학생이 낙방을 하고 말았다.
◆합격률 높아야 유능한 교사
그 후 노력한 선생님들이 진학지도를 하는 것을 보고 깨달은 바가 있었다. 담임 선생님은 학생이 아무리 울며 떼를 써도 그 학생이가서 틀림없이 입학할 만한 대학이 아니면 원서를 써주지 않았다. 『너는 이 대학의 이 학과다』진단을 내리면 요지부동이었다.
그 결과 그 반 학생들은 합격률 90%가 되고보니 역시 유능한 고3 담임이었다. 학교의 입장에서 보면 입학률이 높아 지니 학교의 명예를 빛내는 훌륭한 교사였다.
당시 나는 자신의 실수를 실감하면서도 저렇게 자기가 원치도 않는 대학, 그리고 학과에 가는 학생들이 어떻게 공부를 할까, 의문이 없지도 않았다.
대학에 몸을 담고 있는 지금도 입학때가 되면 같은 의문을 품게된다. 학생과 학부모는 꼭 합격할수 있는 곳을 점치기에 바쁘다.
자기가 앞으로 무엇을 공부할 것인지, 또 그것이 자기의 자질과 어울리는지 등은 안중에 없다. 그저 대학에만 가면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풍조에 편승하여 더욱 부채질하는 것은 고교생대상 월간지나 심지어 일간신문에 나오는 전국대학의 학력고사성적 분포도다.
마치 전쟁시의 작전도 (作戰圖) 모양 몇점부터 몇 점까지는 무슨 대학 무슨 과라는 식의 이도표는 학생의 대학선택에 매우 도움이 되는것 같지만 그 부작용도 적지않게 마련이다.
◆시험점수로 등급 매겨
3백점 이상은 모대학 모학과, 2백 90점대는 무슨 대학의 무슨학과 등등…이렇게 되면 가고싶어도 성적이 모자라 못가는 학생이 있는 반면에 ○○○점을 맞으면 싫어도 ○○대학 ○○학과에 가야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다른 과에 지망하고 싶어도 점수가 나빠서 그 과로 갔다고 남들이 생각할테니 못하겠다는 학생을 실제로 본 일이있다. 그림을 그리고 싶어도 법과에 가야하고 시를 쓰고 싶어도 의과에 가서 의사가 되어야한다. 개인의 적성과는 동떨어진 길을 강요당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가지 부작용은 이 도표를 보고있노라면 마치 사람을 두뇌계층으로 나누는 듯한 인상을 받게된다. 몇 과목의 시험점수로 자신을 2류 3류 심지어 밑바닥 인생이라는 낙인을 찍어버리는 젊은이가 우리 주위에 없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지능지수의 높고 낮음이 있는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개개인 누구나 하느님이 주신 한가지 재질은 있게 마련이다. 얼굴 생김새가 다르듯 개인의 재능도 다양하여 수치에 밝으면 예능에 약할 수도 있고 어문학에 능하면 과학분야에 둔할수 도 있다. 이러한 개인의 특성을 묵살한 이 잔인한 도표는 젊은학생들을 점수별로 등수를 매겨놓았다. 그리고는 상위권 득점자만이 훌륭하고 또 그들이 하는 학과만이 중요한것 같은 인식을 사회에 심게된다.
◆소박한 곡예사의 예
아나톨ㆍ프랑스의 단편에 소박한 곡예사가 나온다.
바르나베라는 이 곡예사는 장날이면 장터에서 멍석을 깔고 곡예를 하여 먹고 사는 가난한 사람이었다. 손으로 땅을 짚고 거꾸로 서서 여섯개의 구리공(銅球)을 발로 갖고 놀기도하고 머리가 발뒤꿈치에 닿도록 몸을 뒤로 제낀 자세로 열 두개의 칼을 던지고 받는 재주도 부렸다. 그러면 구경꾼들의 탄성이 주위에서 터져나왔다. 하루종일 비가내리는 날이었다. 한푼도 벌지 못하고 밤이 오자 잠자리를 찾아가는 길에 수사 한분을 만난 것이 인연이되어 수도원에 들어가 수사가되었다.
그는 여기있는 수사들이 제각기 하느님이 주신 재주와 지식을 다하여 성모님을 섬기는 것을 보았다.
원장은 성모님의 덕성에 관한 책을 쓰는가 하면 그림을 그리는 사람, 시를 쓰는 사람, 조각을 하는 사람 등등 가지각색이었다.
이같이 모두 훌륭한 일을 하고 있는데 바르나베 자신만은 무식하여 그 중 어느 것도 할 수가 없었다. 혼자 한숨 짓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 잠에서 깨어난 바르나베는 성당으로 달려갔다 혼자서 한시간 이상 머물러 있었다. 이때부터 매일 성당이 비어있는 시간이면 그 안에 들어가서는 나오지 않았다. 수사들은 그의 행동을 수상히 여기기 시작했다. 하루는 원장이 두 명의 노인수사를 데리고 성당에 가서 문틈으로 들여다 보았다. 뜻밖에도 바르나베는 성모님 제단앞에서 물구나무선채 여섯개의 구리공을 발로 놀리고 있었다.
노인 수사들은 신성모독이라고 화를 내고 원장은 바르나베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끌어내야겠다고 세 사람이 뛰어들어가려는 순간, 성모님이 제단에서 내려오시더니 푸른 옷자락으로 바르나베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 주시는게 아닌가. 원장은 땅바닥에 엎드려 중얼거렸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을 뵙게될 것이다』
바르나베는 우리에게 한가지 근본적인 명제를 던져주고 있다. 하느님이 주신 천성을 최대한 발휘하여 그 길로 정진하는것- 이것이 우리 각자가 실현해야될 인간상일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교육풍토도 이런 각도에서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남궁연 교수ㆍ마리 아네스
◇1932년 강원도 춘천 출생
◇56년 서울문리대 불문과 졸업
◇67년 프랑스 소르본느대 불문학 박사
◇68년∼현재 성심여자대학 불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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