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를 하다보면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 재미가 만만치가 않다. 어쩌면 취재기자의 보이지 않는 자신이야말로 넓은 발과 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곧 발로 뛰어야 하는 기자의 특권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대개 어려움과 고통 속에 자연스럽게 축적된 기자만의 엑기스라고 봐야 옳을 것이다.
기자 생활 동안 무수한 사람들을 만나기는 하지만 기억 속에 뚜렷이 남아있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가 않다. 기억할 수 있는 머리의 용량이 한계가 있을 뿐더러 늘 새로운 사람들로 그 용량이 채워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최판순 할머니에게 대한 추억은 20여년의 기자 생활 동안 흐린 기억 속에서도 가끔 떠오르는 한 사람으로 아직도 생생하다.
85년도의 일이었다. 그러니깐 지금부터 10여 년 전쯤의 일이었을 것이다. 현장을 뛰었던 당시 나는 한국 평협이 주관한 제3회 가톨릭대상을 수상한 최판순 할머니를 찾아 충북 괴산으로 취재를 갔었다. 교회와 지역 사회에 봉사한 공로로 가톨릭대상 사랑부문을 수상하게 된 최마리아 할머니는 참으로 평범한, 그저 할머니일 뿐이었다. 그러나 최판순 할머니와의 만남은 취재기자로서의 행운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던 소중한 순간이었다.
1미터 50센티나 될까. 우리네 어머니들의 표준키를 넘지 않는 자그마한 키가 우선 푸근한 마음을 갖게 한 마리아 할머니는 결코 처음 만나는 「얼굴」이 아니었다. 괴산본당 사제관에서 초대면한 제3회 가톨릭대상 수상자 최판순 할머니는 “상을 받게 됐다”는 평협의 통보를 받고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상을 받는다는 개념이 얼른 떠오르지 않는 모양이었다.
한국 나이로 일흔두 살이 되는 고령이었지만 당시 마리아 할머니의 주름진 두 볼엔 홍조가 가시지 않았다. 「전교하는 일」과 「이웃을 돌보는 일」에 삶의 전부를 쏟아 넣은 할머니의 단순한 신앙과 진솔한 삶을 한 눈으로 읽을 수가 있었다. 굳이 딱딱하기만 한 인터뷰 형식을 도입할 필요도 없이 우린 아주 자연스럽게 말문이 터졌고 적은 대화 속에서도 무수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 순산 일반 보도매체의 기자가 들이닥쳤다. “몇 명에게 봉사를 베풀었는가” “언제 고향을 떠났는가” 등등 신속성을 자랑하는 언론매체의 기자답게 그는 정확한 수치를 요구하는 질문을 총알 같이 퍼부었고 할머니는 손가락을 모두 동원, 셈을 하느라 미처 답을 하지 못했다.
정확한 수치와 연도를 기억하기 위해 생땀을 흘리는 할머니를 보면서 대신 대답하고 싶은 마음이 충동처럼 일었다. 신속과 정확이 언론매체의 생명이긴 하지만 적어도 마리아 할머니에겐 무리한 요구인 듯했다. 원하는 답을 얻어낸 그가 돌풍을 일으키며 떠났을 때 할머니의 얼굴엔 안도의 빛이 완연했다. 적어도 내겐 그렇게 보였다. 아마도 할머닌 평생토록 그렇게 힘든 시험은 처음 치러 보았을 것이었다.
그가 떠난 후 잠시 나는 혼돈에 빠졌었다. 과연 그들은 수치를 통해 할머니가 걸어온 수십 년의 삶을 압축해 냈을까. 하느님을 향해 활짝 열려 있는 단순한 신앙, 그 깊이를 잴 수가 있었을까. 혹시 내 취재 방법이 구태의연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나 수 갈래로 떠올랐던 그 혼돈 속에서도 나는 한 가지 확고한 결론을 내렸었다.
마리아 할머니의 이야기는 「마음을 읽지 않고, 마음이 통하지 않고는 결코 쓸 수 없는 기사라는 것」을.
최근, 언론을 통해 접한 몇 가지 사건들을 보면 우리 언론의 취재 방식이 아직도 수치에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닌가 의문을 갖게 된다. 아직도 우리의 취재 방식이 취재 대상의 마음을 읽는 선까지 오지 못하고 있는 것만 같다. 마음이 통하지 않는 일방적 기사, 그것은 이미 무서움의 대상이 될 뿐이다.
흔히 언론은 사람을 죽이고 살리기도 한다. 수술비가 없어 사경을 헤매던 딱한 사람들의 사정도 언론에 잘만 소개되면 구원의 손길을 얻게 된다. 그 사랑의 손길을 이어주는 언론의 역할이야말로 사람을 살리는 성스러운 임무가 아닐 수 없다. 이미 그 같은 역할만으로도 우리 언론들은 찬사를 받을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발생한 몇 가지 사건 보도는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언론의 또 다른 얼굴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탁명환 소장 살인 사건이 그렇고 복지시설 「꽃동네」사건이 그렇다. 보도 자체는 필요한 것이지만 그 보도가 하나의 요인이 되어 탁명환 소장은 유명을 달리했다. 사안은 달라도 꽃동네 역시 보도라는 이름 앞에 사정없이 내던져진 채 아픔을 겪고 있다.
아직도 우리의 언론 취재는 이유기에 머물고 있는 것 같다. 정확한 확인 절차 없이 보도라는 이름으로 던진 돌이 종사자들과 식구들에게는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지를 미처 생각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꽃동네 취재는, 아니 복지시설의 취재는 마음으로 접근할 때만이 가능하다. 마음을 열어야만 제대로 취재할 수가 있다. 아니 그보다는 일부일만이라도 단 하루만이라도 꽃동네에서 그 가족들과 살아보라는 권고를 하고 싶다. 그들의 삶을 나누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것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취재로 불릴 수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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