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까지 젊은이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TV 드라마가 있다. 「마지막 승부」라는 스포츠 드라마가 그것이다.
작가는 동양적 미모의 한 여대생을 사이에 두고 고교 동창생이면서 팀메이트였던 친구 간에 벌이는 애증과 고뇌를 심도 있게 풀어나가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던 것 같다. 물론 작가가 의도하는 바이겠지만 극중의 주인공들은 나름대로 심한 갈등을 겪었다. 각기 뚜렷한 개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마음과 행동을 일치시키지 못하거나 조화를 이루지 못해 겪게 된 갈등들이었다.
이 같은 경우는 가정에서도 흔히 나타날 수 있다.
얼마 전 충남의 모 읍 단위 기관에서 노인복지 문제를 종합적으로 검토하기 위해 관내 노인들을 대상으로 의식조사를 한 적이 있다. 여러 문항 중 관심을 끄는 것은 부모들이 어느 때에 자식들로부터 행복을 느끼느냐는 것이었다. 응답에서 노인들은 맛있는 음식이나 선물을 사줄 때, 여행을 시켜줄 때, 문안차 자주 찾아오거나 용돈을 넉넉히 줄 때 등에서도 행복을 느끼지만 자기 일에 충실하여 부모의 속을 썩이지 않음을 느꼈을 때를 으뜸으로 꼽았다. 이 같은 통계가 전체 부모들의 의사를 추출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경제력이 없는 노인들이라 해서 물질적인 만족이 우선할 것이라는 통념을 깨고 물질 못지않게 심리적 안정이 중요하다고 지적한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바꿔 말하면 부모의 행복은 자식들이 물질을 제공하는 행동과 부모의 속을 상하게 하지 않는 마음이 균형을 이룰 때 가능하다는 뜻과도 같다. 어느 한 쪽이 미흡하여 균형이 깨지면 그만큼 부모는 불행을 느끼게 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국민의 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정부는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존재해야 한다. 그러기에 정부는 책임 있는 정책을 내세워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하고 국민은 정부를 믿고 행동으로 따라 줘야 나라가 발전할 수 있다.
한동안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고 25일로 취임 1주년을 맞았던 김영삼 정부의 개혁정치를 보자. 그간 각종 부정부패를 척결하고자 노력한 정부의 공과를 부인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과거 정권에서 검은 돈줄을 거머쥐었던 금융계의 대부가 유유히 해외로 빠져나간 것을 기정사실화시킨 것은 무엇으로 변명하겠는가. 그러한 비리를 묻어두는 한 정부의 개혁 의지는 빛이 바랠 수밖에 없다.
지난 2월 초 당국은 올 들어 소비자 물가가 1.3% 올랐다고 밝혔다.
그것도 계절적·마찰적 요인이 있는 일부 농수산물이 인상을 주도했을 뿐 향후 출하가 본격화되면 인상 요인이 자연 해소되므로 하반기엔 안정될 것이라 했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를 만들고 싶다」는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의 발표이기에 정말 그대로 믿고 싶다.
하지만 초등학교 앞에서 떡볶이를 파는 아줌마가 작년 이맘때보다 9배나 뛰어버린 파 값과 두 배나 오른 마늘 값, 27%나 인상된 고추장 값을 코흘리개들에게 도저히 떠넘길 수 없다 하여 성수기임에도 폐업을 선언한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사순절을 지내면서 생각나는 게 있다. 사춘기로 접어든 중학 1년생 시절이라 기억된다. 같은 동네에 살면서 가장 가까웠던 친구는 개신교 신자였다. 어린 나이임에도 성경 구절을 줄줄 외웠던 그는 봉사와 희생정신이 몸에 배어 있었던지 추위에 떠는 친구에겐 오버코트를, 점심을 못 먹는 친구에겐 도시락을 서슴없이 건네주곤 했었다. 그는 모두가 싫어하는 화장실 청소를 도맡아 하면서도 콧노래로 찬송가를 불러 그를 잘 모르는 급우들은 오히려 그가 미친 것 같다고 비꼬기도 했다. 말과 행동이 일치된 그가 경탄스럽고 도대체 그와 같은 힘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궁금도 하여 나는 어느날 그가 다니는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신자 수 1천여 명인 그 교회엔 목사님을 중심으로 장로와 집사가 여러 사람 있었다. 그 중에서도 나이가 지긋하고 인상도 좋은 모 장로는 교회 살림을 맡아 목사님 다음으로 신자들의 신망을 얻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대로변에서 큰 소동이 벌어져 구경꾼들이 길을 메우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궁금하던 차에 뛰어가 보니 내가 존경했던 그 장로가 대여섯 명의 여인들에게 멱살을 잡힌 채 갖은 수모를 겪고 있지 않는가. 며칠 후 알아낸 사실이지만 그 장로는 신자들로부터 무이자로 돈을 빌어다가 가난한 사람들을 상대로 고리로 이자놀이를 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나는 친구와 장로 사이에서 너무나도 다른 신앙인의 모습을 발견하고 회의에 젖어 교회에 나가는 것을 중단했다.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의 아픈 추억인 동시에 어리기 때문에 있었던 잘못된 판단이기도 하다.
2천년대 복음화를 위해 모두가 나서야 할 이 시점에서 그때를 생각해보면 몸이 오싹해진다. 세상의 어둠 속에서 빛이 되거나 세상의 부패 속에서 소금은 되지 못할지언정 나의 그릇된 행동과 말로 인하여 행여 교회의 문턱을 높여놓고 있지는 않은지. 아니면 예수님의 질책처럼 하늘나라로 향하려는 착한 사람들을 가로막고 있지나 않은지.
주님과 함께 생각하고 함께 행동하는 그런 참 신앙인이 될 가능성이 내게도 있는 걸까?
자꾸만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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