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의 기질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수 년 전 하와이 교민에게 들었던 실화 한 토막을 떠올리면 지금도 저절로 웃음이 난다. 그 실화의 재미는 그가 하와이로 이민을 갔던 초창기에 직접 겪었던 이야기라는 데 있다.
이민 초기에 그는 어려서부터 먹었던 자장면 맛을 잊지 못해 중국집을 찾았다. 마침 한국식 자장면을 잘한다고 소문이 난 한 중국집을 소개받은 그는 그 집에 들어서는 입구에서부터 자장면을 주문했다. 한국식 영어였지만 그의 주문은 “자장면 곱빼기 빨리 주세요”였다. 주문한 지 1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맛있는 자장면을 빨리 먹고 싶었던 그는 주방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순 한국말로 “자장면 빨리 주세요”하고.
순간 나이를 꽤 먹은 듯한 뚱뚱한 주방장이 주방에서 뛰어나왔는데 놀랍게도 그는 중국식 한국말을 하고 있었다. 다음은 그 중국인이 했다는 한국말. “우리 살림 한국에서 살 때 빨리빨리가 싫어서 하와이 왔다 해. 그런데 하와이 와서 또 빨리빨리 소리 들어 기분이 나쁘다 해. 우리 살람 자장면 안 팔아도 좋다해. 빨리빨리 나가라해.”
미처 변명도 하지 못한 채, 자장면은 대면도 하지 못한 채, 그는 식당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그가 나중에 안 것은 그 중국인은 자장면집 주인이었고 빨리빨리 때문에 쫓겨난 한국인이 자기만이 결코 아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를 그 중국집에 소개한 하와이 한국인들 역시 한 번쯤은 그 식당에서 쫓겨나는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것도 그는 나중에야 알았다고 한다.
물론 약간의 양념이 곁들여 있지만 하와이 교민의 이 체험담은 수 년 전 중국에서의 경험을 떠올리게 했다. 수교 전의 중국이라 방문이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중국의 안내원들은 한국 방문객들을 이미 ‘빨리빨리 손님들’로 분류해 놓고 있었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중국에 한국인의 발길이 잦아지기 시작하면서 안내원들이 제일 먼저 배운 한국말이 빨리빨리였다는 것이다.
보다 흥미로운 사실은 빨리빨리 부대의 선봉에는 다름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정부 관인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양국 간의 수교를 위한 전초작업으로 중국을 드나들었던 한국의 관리들로부터 배운 빨리빨리는 곧 한국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던 것 같다. 안내원은 정부 관리, 국회의원, 대학 교수, 경제인, 그리고 민간인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람이라면 어김없이 사용하는 첫 번째 말이 빨리빨리라고 자신 있게 증언해 주었다.
또 하나의 아이러니는 중국인의 대표적 특성이 바로 만만디(여유)라는 사실이다.
‘만만디’와 ‘빨리빨리’. 두 민족을 특징짓는 이 두 가지 대조적 개념의 우열은 이제 수교로까지 발전한 양국 간의 관계 속에서 뚜렷이 찾아볼 수가 있다. 조르다시피 한 한국인의 악수와 마지못해 손 내민 것 같은 중국의 악수,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급하기야 중국이나 한국, 매 한가지임에도 수교 과정에서부터 우리는 꼭 밑지는 장사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빨리빨리 병은 이제 세계적인 명물로 자리 잡았다고 해도 지나침은 없을 것이다. 이 고질병은 어쩌면 해외여행이라는 붐을 타고 세계적으로 확산이 되었을 것이다. 순서대로 나오는 서양 음식에서 한국인은(대개 단체 여행자일 경우) 후식에 해당하는 마지막 코스를 안 먹는 이상한 사람들로 인식되고 있음은 이미 오래 전 이야기다. 식사시간을 마음껏 즐기는 현지 운전기사의 느긋함이 동양 사람을 무시해서 피우는 늑장이라고 억지를 부리는 한국이의 이야기도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다.
빨리빨리 서둘러 성장해온 우리의 모습, 지금쯤 한 번 계산해 보자. 우리는 과연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가. 아마도 얻은 것은 경제 성장일 것이다. 개인의 소득도 높아졌고 따라서 삶의 질도 높아졌다. 빈부의 격차가 벌어진 것도 우리가 얻은 것이라면 얻은 것일까.
그러나 우리가 잃은 것은 그보다 많은 것 같다. 사람됨을 잃었고 한국인 특유의 온유함과 좋은 품성을 잃었다. 한국인의 특성으로 상징되던 은근과 끈기는 이미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고 말하는 이도 많다. 어느새 기다리지 못하고 참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특성으로 새롭게 자리 잡아버린 것이다.
빨리빨리 원칙하에 세워진 한국의 아파트, 다리들은 이미 무너진 것도 있고 나머지도 안전치가 못하다는 진단도 있었다. 2차대전 당시 만들어져 지금도 독일의 심장부로 자리하고 있는 아우토반, 아니 그보다 훨씬 앞서 수백 년 전에 만들어진 프랑스, 영국의 아름다운 다리와 건축물들이 아직도 그 모습을 전 세계 관광객들에게 자랑하며 버티고 있는 사실과는 정말이지 커다란 대조를 이루고 있지 않은가.
물론 빨리빨리가 불필요한 것만은 아니다. 눈이 팽팽 돌 만큼 바쁘게 돌아가는 국제 정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빨리빨리 서둘러야만 한다. 기술 개발이 그렇고 수출산업 역시 그렇다. 그러나 그 개발과 풍요가 인간의 참 마음을 빼앗는 토대 위에 이루어져서는 곤란하다. 한 번 빼앗긴 우리의 심성, 어진 마음을 되찾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선진 대열에 조금 늦게 진입한들 별다른 제도가 있는 것도 아니다. 조금 늦게 부자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잃어버린 우리의 국민성 되찾기 운동이 아닌가 싶다. 국민성을 되찾을 수만 있다면 현재 한국 평협이 펼치고 있는 도덕성 회복 운동은 자연히 이루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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