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이 통일되기 이전에 동독은 트라반트와 바르트부르크라는 승용차를 생산했었다. 승용차는 우선 안전하고 편안하며 고장이 없어야 한다는 요즈음의 개념으로 본다면 동독의 승용차는 그야말로 자동차의 범주에 넣을 수 없을 정도다.
특히 트래비라는 애칭으로 불린 트라반트는 차체가 플라스틱으로 되어 있다. 사고가 나면 찌그러지는 것이 아니라 산산조각으로 부서진다. 게다가 엔진은 오토바이에서나 쓰는 2행정식이어서 가히 달리는 매연공장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베를린 장벽이 극적으로 개방되었던 지난 90년 수많은 동베를린의 트래비들이 매연을 휘날리며 서베를린을 정복했었다. 당시 한 서베를린신문에 나온 만화 한 토막.
트래비를 선두로 벤츠, BMW 등 고급차들이 줄 지어 달리다 마침내 빨간 신호등이 켜지자 교차로에 점차했다. 이윽고 파란 주행 신호가 들어왔다. 제일 선두에 있는 트래비는 엔진 소리 요란하게 하얀 매연을 계속 뿜어내었지만 도대체 출발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참다못한 뒤차의 서독인들이 다가가 액셀러레이터를 열심히 밟고 있던 동독인에게 물었다. “차가 고장 났어요?”
“아니요. 누가 건널목에서 껌을 뱉었는데 그것이 마침 내 차의 앞바퀴에 묻었소. 그래서 바퀴가 도로에 붙어버렸소. 뒤에서 좀 밀어주시요!”
“???”
트래비의 성능을 유감없이 힐난한 이 만화는 동독인들의 자존심을 건드리긴 했지만 별로 과장된 것만은 아니었다. 그래서 동독 공산주의의 붕괴는 바로 자동차의 수준으로 상징되는 생활수준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이 그 주요 원인이었다.
독일의 경제 통합이 완성되면서 동독인들이 할부제도를 이용해 너도나도 성능 좋은 차 구입에 열을 올렸다는 사실은 지극히 당연했다. 그러나 성능을 과신한 많은 동독인들이 과속에 과속을 거듭했고 그 결과는 대형 교통사고의 속출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 희생자가 되고 말았다.
공산주의는 무너졌지만 그 그림자는 아직도 남아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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