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하느님이다』라는 말이 실감있게 들리는 때인것 같다.
세상의 모든 것이 돈을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말이 나옴직하다. 『돈천만원만 있다면 쓸데도 좀쓰고 며칠간 한바탕 실컷 놀아보고 죽어도 원이없겠다』고 돈에 한이 맺힌 듯한 근로자가 말하는 것을 들었다. 이 말에 많은 젊은이들이 공감하는 듯 했고…
◆교회도「개업」
또 경우에 따라서는 이런 한을 풀기위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돈이 사회 각 분야에서 위력을 크게 과시하자 예외없이 교회 안에서도 둘째 하느님 때로는 첫째 하느님으로 대우받고 있는 것 같다. 교회가 하나 생기면「개업」했다는 말도한다. 구멍가게도 상업의 윤리를 지켜 다른 가게 바로 곁에는 문을 열지 않는다는데 교회는 한 건물안에 둘씩 들어서서 서로 교인을 이끌어간다고 비난한다.
최근 몇 년동안 가톨릭에서도 교세가 급증함에 따라 건축붐이 한창이다. 성당신축, 중축개축, 교육관 건립, 성지개발 등등… 어떤 지방 교구에서는 2년동안 총 40개 본당중에서 30여개본당이 건축 기금을 거뒀고 어떤교구는 2백주년 기념 사업으로 시내에 10여개 성당 신축운동을(?)벌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두번이나 성당 건축기금을 냈다는 신자들은 보통이고 세번냈다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았다. 어떤 가정주부는 주일날이면 식구들에게 헌금할 것 나누어주고 건축기금ㆍ교무금ㆍ회비 그외 성당에서 물건 팔러온 사람들에게까지 신경 쓰다보면 주일을 맞는 것 조차 부담스럽다고했다. 근로자들 중 몇몇은 체면차리지말고 용기를 갖고 교회에 다니기전에는 소외감 때문에 어렵다고 했다. 또한 냉담하게 되는 이유중에 하나라고도 했다.
◆주일 맞는게 부담스러워
돈 있어야 교회에 다닐 수 있다는 말도 있고 개신교에 못지않다는 이야기도 더러한다.
교회운영 책임을 맡은 누구라도 신자들에게 되도록 부담을 안 주려고 노력할 것이다. 다만 공동체의 필요에 의해서 성전을 짓고 다른 일을 하다보면 자연히 부담이 지워지고 따라서 쉽게 불평이 나오기도 할만하다. 때때로 여유있게 살면서 인색한 사람들에게 한마디하는 것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마음 아프게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성전을 건축하다 보면 마음안에 성전이 무너지기 쉽다』라는 말을 음미해 보는것도 좋을 것 같다. 기쁜소식을 전해야 할 교회가 좋은 목적일지라도 너무 신자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운다거나 또는 신자들이 좋은일에 희생봉헌을 마지못해 억지로 한다면 신앙은 메말라 갈 것이다.
교회역사를 보면 한 때 성전을 건축하기 전에 거룩한 일을 깨끗한 마음으로 하기위해 고백성사를 보았다고 한다. 하느님의 집을 지으니까 그분의 뜻을 따라 그분이 좋아하실 방법으로 일하려고 노력하였다.
까롤로 까레또는「사막에서의 편지」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아름다운 성당과 장엄한 예배를 위해 교회가 언제나 풍부하기를 원하는 내 어머니의 신앙을 내가 의심할 수 있겠는가? 그의 아들로서 어머니와는 아주 반대로 소박한 성당 가난한 방법에 의한 사도직을 원하고 있다.
크게 비싸게 또는 싸게 초라하게 성전을 지었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에 대한 사랑의 크기가 중요하다고 한다.』
◆헌금 많이하고도 겸손
자주 돈을 내야된다는 말을 들으며 가난한 사람이 조금 헌금하고 떳떳하기도 어렵고 부자가 많이 헌금하고 주위에서 칭찬을 받으며 교만해 지지않기도 힘든 일이다. 복음이 헌금에 대해 가르치는 것은 가난한 사람이 헌금을 적게했어도 자기 살림형편에 비해 성의껏했다면 움츠러들지 말고 떳떳하기를 바란다. 또 부자는 하느님이 많이 주셨으니 이런 기회에 좋은일좀 하겠다는 뜻에서 많이 헌금하고도 겸손한 마음을 갖는 것이다. 이런자세로 헌금을 해야 고귀한 봉헌으로 가치를 높이고 자신들의 마음도 풍요롭게 자랄것이다. 이런 봉헌을 통해 건축된 성당에서 가난한 사람은 미안한 부자도 겸손하고 차분한 자세로 기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봉헌태도에서 교회안에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재물때문에 서로 다른 형태의 소외감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자세가 요즈음 흔히 이야기하는「가난한 교회」모습이라고 할수 있겠다.
참다운 교회의 발전은 외적으로 나타나는 교회건물이나 사람들의 숫자가 아니다. 사람들 마음안에 복음적인 정신이 심어지고 생활에서 증거되는 것으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영국의 국회의사당 낙성식 때 윈스턴 처질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이 집을 만들었지만 이 집은 우리를 만들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희생으로 세워진 성전을 통해 사람들 마음안에 또 이 사회 안에 하느님 나라가 건설되기를 바라고 싶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