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한마디로 지극한 사랑으로 부르시는 아버지와 전적인 신뢰로 대답하는 아들의 모습이었다. 거룩한 어머니이신 교회를 통하여 하느님은 극진하고도 정중하게 부르시고, 11명의 서품자들은 한결같이 “예, 여기 있습니다”고 서슴없이 대답한다. 바로 “어서 말씀하십시오”하고 기다리는 아브라함의 그 응답으로, 그 신뢰의 모습으로.
하기에 가장 비천한 자, 가난하고 겸손한 자의 자세로 제단 앞에 전신으로 엎드려 순명과 봉사를 약속한다. 온 마음으로 응답하고 온 몸으로 고백하는 절대의 신앙으로 말이다. 마치 적신으로 두 팔 벌린 채 성부께 온건히 내맡긴 십자가의 봉헌처럼 서품자들은 온 생애를 제단 위에, 십자가의 길에 내어놓는다.
여기에 사랑이신 하느님은 그냥 있지 못하신다. “…빌어주소서, 불쌍히 여기소서. 자비를 베푸소서, 용서하소서, 구원하소서…” 긴 시간을 통한 성인 호칭기도는 부족할세라 보살피시는 하느님의 간곡한 사랑이다.
그 사랑은 다시 안수기도로 이어진다. 거룩한 하느님의 사람으로 성별하여 자랑스럽게 세워놓으신 11명의 서품자에게 1백20명의 사제 한 분 한 분이 차례로 거쳐 가며 감싸듯 두 손을 올려놓고 얼마나 극진하게 간원하는가! “이 사제를 위하여- 이 사제를 위하여-” 축복과 연민과 격려로 뭉클한 형제애적 감동을 통하여 하느님은 당신의 사랑을 다지고 또 다지고 다시 확인시키는 것인가!
그래도 못내 마음이 놓이지 않는 하느님은 크리스마 성유로 새 사제의 손을 축성하고 다시 한 번 직무에 대해서 읽은 것을 믿고, 믿는 것을 가르치고 가르친 것을 실천하라는 다짐 후에 양 볼에 다정한 입맞춤으로 평화의 인사를 나누고 나서야 이제 안심하고 파견하신다.
귀한 자식에게 무거운 임무를 지워 먼 길 떠나보낼 때 염려와 기도로 이르고 또 이르는 육친의 어버이처럼 살뜰하고도 세세히 보살피시는 하느님의 자부적 사랑을 여기서 본다. 아니, 가슴이 저리도록 당신의 사랑을 새겨준다는 표현이 옳은지도 모른다.
하면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어 나의 생명을 지으시기까지 기울인 하느님의 사랑과 정성이 얼마나 크고 지극했으리라는 사실 또한 자명한 것이 아닌가! 따라서 신뢰로 가득한 마음으로 대답할 수 있다. “주님 저 여기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을 실천하겠습니다”라고.
부디 새 사제들이 이 자리에서 다짐하며 그린 자신의 사제상이 퇴색하지 않기를 비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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