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대정부 질문에 나선 어느 의원이 소값 폭락과 관련해서 근래 농촌에 나도는 말을 인용하였다. 『천천히 망하려면 자식을 대학에 보내고 빨리 망하고 싶으면 소를 키워야 한다』고 농민들은 자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은 망하지 않으려고 혹은 자식을 대학에 보내려고 안간힘 써서 키우던 소를 견디다 못해 시장에 내다 파는 농민의 심정은 얼마나 비참할까? 그래도 높은 양반들은 걸핏하면「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이라는 빛바랜 원론만 되풀이한다.
◆걸핏하면 농자천하지대본
그 뜬 구름 같은 원론을 향해 울부짖는 소리가 있다. 그것은 돈을 벌려는 사람들이 헐값에 산 소의 무게를 몇근 더 늘리려고 아귀처럼 소에 물을 먹일 때 소의 울부짖는 처절한 소리다.
언젠가 텔레비전의 엥커맨이 심각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시청자 여러분, 소의 고삐를 나무에 매달고 소의 벌린 입에 물을 부어넣는 장면을 상상해 보십시오. 소가 물을 들이키지 못하면 굵은 몽둥이로 무자비하게 매질을 해댑니다』
소 따위 짐승에 물좀 먹인들 대수냐고 할는지 모른다. 문제는 그 작태가 우리의 사회적 병리와 비뚤어진 가치관을 상징하는 데 있다. 몇달 전까지 관계당국이나 고명한 분들이 매스컴을 통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우리나라의 눈부신 발전상을 선전하고 2천년대의 청사진을 펼쳐 보이는 데 열을 올렸다.
◆겉모양만 커보였을 뿐
그래서 우리는 이미 선진국의 문턱을 넘어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었다. 그러나 그것이 착각이었다는 것이 요즈음 분명해졌다. 미국 보호주의의 소나기식 압력으로 하루아침에 나라 안팎이 발칵 뒤집히고 정부도 업계도 갈팡질팡하고 있다. 우리의 경제는 억지로 물을 먹인 소처럼 겉모양만 약간 커 보였을 뿐, 실체는 취약하기 짝이 없었던 것이다.
이「소에 물 먹이기」 식 방법을 가장 철저히 활용하고 있는 데가 교육계다. 고 3학생의 일과를 더듬어 보면 즉시 그것을 실감할 수 있다. 아침 다섯시나 여섯시에 일어나면 밥을 먹는둥 마는둥 무거운 책가방을 챙겨 학교로 향한다. 한두 시간 참고서를 펼쳐놓고「암기 기계」 식 자습을 한다. 그리고 일곱 시간 내지 여덟시간 정규수업을 받는다. 물론「복사 기계」식 학습이다. 수업이 끝나면 다시 밤열시까지 문제집들을 머릿속에 쑤셔넣는 공부를 해야한다. 집에 돌아오면 열한시가 넘는다. 그래도 잠자리에 들어서는 안된다. 졸린 눈을 비벼 가면서, 때로는 잠 안오는 약「타이밍」을 먹어가면서 한두시까지 문제집을 훑어보아야 한다. 잠자고 학교를 오가는 몇 시간 외에는 잠시도 쉬지 않고 외우고 또 외워야한다. 영락없이 소에 억지로 물을 먹이는 꼴이다. 학생이 지쳐 그 지식의 물을 들이키지 못하면 교사나 학부형이 몽둥이 대신 말로 때리거나 어르면서 다시 들이키게 한다.「어떤인간을 길러낼 것인가」하는 교육근본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괴상한 현상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학생 자신도 학교도 살아남을 수 없다고 교사들은 자조한다. 국가의 백년 대계보다 당장 눈앞의 일이 문제라고 한다. 그래도 높은 양반들은 걸핏하면「홍익인간」이라는 빛바랜 원론을 되풀이 한다.
◆입시철 미사
경제성장이라는 국시적(國是的) 추구는 황금을 우상화시켰고, 해방 후 40년간의 무상한 정치적 변천과 뼈저린 체험은 우리국민의 시야를 근시화 (近視化)시켰다. 그래서「소에 무을 먹이는」가치관이 빚어진 것이다.
우리 신자들도「시대의 자식」이라 예외일 수 없다. 자녀들의 인격적ㆍ신앙적 성숙보다 우선 그들이「암기경쟁」에서 이기고 명문학교에 들어가기를 바란다.
입시철이 되면 자식의 합격을 빌어 달라고 본당신부님에게 미사를 청하고 미사예물도 여느때보다 많이 낸다. 이러한 소망은 자녀가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다시 연장되어 빨리 출세하고 돈을 잘 벌기를 바라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가장 심각하게 성찰해야 할 문제는 교회가 이런 가치관의 물질주의화에 제동을 걸 힘이 없다는 데 있다. 그것은 교회가 교세의 확장 또는 과시에 치중하다 보니 부지불식간에 현실과 타협하며 물질주의적 발상이나 사고를 합리화시키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생활 다르고 세속생활 다른 이중적 처세로 시속 (時俗) 에 동조하는 데서 연유할 것이다.
예수께서「약은 청지기의 비유」를 말씀하신 것은, 믿는 이들이「빛의 자녀」로서 정의와 애덕을 실천하며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일, 그리고 죽어서 하느님을 뵐 때에 대비하는 일에서는 누구보다도 민첩하고 슬기로와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강조하시기 위함이다. 그러나 우리는 재빨리 실직 대책을 세운 그 청지기의 약은 처사 자체를 본받아「이 세대의 자식」으로 처신하는 경우가 더 많지 않을까?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하느님과 마몬 (재물) 을 함께 섬길 수는 없다. 하느님과 사람을 섬기고 마몬은 종처럼 부릴줄 알아야 하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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