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9일 아침 7시. 우리 반야월본당 김종헌 신부님의 배려로 전국최대의 성지인 해미와 김대건신부님의 출생지인 솔뫼성지 순례의 장도에 올랐다. 아침기도와 묵주기도로 시작된 성지순례의 날이었다.
해미는 조선조 5백년간 서해안 방어로 호서좌영이 있어 그 진영장은 군사범 처벌권을 행사하여 백여년간 박해 기간 중 병인사옥 때 신자 수천명이 재판기록 없이 처형되고、해미천 좌우편 논밭에는 수천명의 신자들이 생매장되어 순교선열들의 유골이 묻혀있다고 한다.
우뚝솟은 순교자탑문에는 조선왕조에 뿌려진 복음의 씨앗이 이곳 해、미기름진 땅 내포의 벌에서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되었다고 새겨져있다.
이곳을 속칭 여수고을이라고 하니 산사람의 입과 코를 막고 심장을 짓눌러 죽게 할때 이들은 죽어가면서도 여수(예수)를 울부짖으며 찾았다는데서 사투리로 여수골이라 전해내려온다는 것이다.
해미 성지에는 생매장 순교성지외에도 해미진영서 문밖 동다리위에서 자래질로 순교하신곳、신자들을 가두고 고문하던 진영내 감옥이있다. 감옥터 앞에 살아서있는 고목에 매달아 고문하던 호야나무엔 아직도 녹슬지 않은 철사줄이 당시의 참상을 말해주 듯 나무넝쿨에 감겨져있다.
그곳에서 순교선열 참배예식을 마치고 충남 당진군 우강면 송산리 김대건 신부의 출생지인 솔뫼로 향하였다. 이곳은 김대건 신부님이 태어난곳、김신부님은 어린나이에 불란서인 모방신부로부터 발탁되어 신학생으로 상경、역관 유진길에게 중국어를 배운 후 모방신부의 소개장을 갖고 중국에 갔다가 마카오에 유학、1844년 12월 15일 부제품을 받고 다음해 1월 서울에 도착하여 조선순교록을 정리하였다. 이해 4월 30일에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나침판을 사용하여 서해를 횡단、상해 긴가함에서 한국 최초의 신부로 서품되었다.
한국교회 소식과 지도를 서방에 전해주고 선교사와의 연락을 위한 항로를 개척하다 체포되어 6회에 걸쳐 혹독한 고문을 받고 선교부와 신부들에게 보내는 편지와 유서를 쓴 후 1846년 9월 16일에 한강 새남터에서 25세를 일기로 순교하였다.
예언자와 순교자는 왕좌(王座) 를 바라보지 않는다. 그들의 눈은 영원에 못박혀 있을뿐이다.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다.
우리가 오늘과 같이 값진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수많은 순교자들의 피의 대가가 아닐까?
칼집은 닳아 없어져도/ 칼은 빛나며、육체는 썩어 없어져도/ 영혼은 길이 살아남나니… (바이런)
순교자、그들은 영원한 한 알의 밀알로 천상복락을 누릴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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