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녀님、수녀님의 제게 대한 관심은 크리스찬의 숭고한 사랑때문인가요? 아니면 병든 한 인간에 대한 연민 때문인가요?』
『수녀님、인간의 다른인간에 대한 사랑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만족을 위한 교묘한 겉꾸밈이 아닐까요?』
『수녀님 희생을 상징하고 이 세상에 대하여 죽었다는 그 수도복은 자신을 감추기위한 소라껍질과 같은것이 아닐까요? 보다 인간적인 자신을 억제하기 위한、그리고 고상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선전하기위한 보호막이요 선전판 같은것이 아닌가요?』
『수녀님 수녀님도 인간인데 인간이 갖는 본질적인 욕구가 수녀님에게는 없단말입니까? 진실이 사랑이 희생과 봉사가 어떤강아지가 빨다가버린 뼈다귀란 말입니까? 차라리 그 검은 너울 훨훨 벗어던지고 결혼을 하고 자식낳고 사는것이 좀더 인간다운 삶이고 자신에 충실하는것이 아닐까요?』
나는 안칠라수녀님을 테스트하고 있었다. 지난 4개월여 한주일에 두번씩 병원에 올때마다 꼭 찾아와주고 말없이 기도해주고
『이 하사님 그간 잘지냈어요』
라고 인사하고 가는 수녀님의 모습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이 분노란 인간에게 자기자신 그리고 자기 가족을 뛰어넘은 사랑이란 거짓이고 진실 정의 희생 봉사란 다 자기자신을 호도하기 위하여 교묘하게 사용하는 가면같은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나의 주관을 통째로 흔들어놓는 도전장 같은 것이 내게 압박해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안칠라수녀님과 첫만남을 한것은 66년 4월 대구 제1육군병원에 내과환자로 입원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서였다. 속은 병들어 있어도 겉은 멀쩡한 환자였지만 이제 막후송을 온 환자가 침대를 지키지 않을 수 없는 체면때문에 침대에 누워있는 나에게 수녀님이 다가와서『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온 것이 첫 만남이었고 인자하고 상냥함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 후 몇번 찾아오면서 나도 천주교리에 관심이 있다는것、전에 천주교회에 다니다가 중단했다는 등의 이야기를 털어 놓았고 수녀님은 매주 병원 방문때마다 내 침대를 들려 가게되었다.
또 병원에 올때마다 미숫가루 봉지、사탕봉지를 들고와서는 침대위에 놓고가고 손에 쥐어주고 가기도했다. 그 때마다『이 양반이 내나이 30이 낼 모렌데 애기를 꼬시듯이 사탕으로 날꼬시려고 작정했나』하는 어줍잖은 기분도 들었지만 그래도 수녀님의 작은 사랑의선물을 받기도했고 달콤한 사탕을 씹으면서 점차 수녀님께로 내마음은 쏠려가고 있었다.
달콤한 사탕맛보다 그사탕에 담겨있는 수녀님의 정성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환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리반에도 나갔는데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갖겠다는 마음보다 천주교에 대한 지식 습득이 목적이었고 혹시 내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근원적 갈증 즉 사랑과 진실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러면서도 항상 긴장해 있는 마음이 있었으니 수녀님의 사탕선물 미숫가루선물 공세에 내가 함락되어서는 안된다는 강박관념때문이었다. 내가 10여년간 쌓아온 주관의 성이 수녀님에 의해서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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