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리 잘 알지 못 하는 사람이라도 그가 살고 있는 집을 방문해 보면 그와 그 가족의 생활이나 인품을 대강 알 수 있다. 집은 생활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에 아무리 가장하려 해도 집 주인의 성격과 그 가정의 생활상이 물리적 신체인 집을 통해 드러나기 마련이다.
교회 건축도 마찬가지다. 전례라는 기능을 담고 있는 성당은 교회 문화의 표상인 동시에 시대와 신앙의 내용을 반영한다. 높고 긴 장축의 서양 중세 고딕성당은 종말론적인 경건주의 신앙을 나타내고, 중앙집중적인 근대 성당은 육화론적인 신앙 체계를 반영한다. 우리의 교회 건축도 그간 1백년의 역사를 통해 한국 가톨릭 문화의 표상으로서 시대와 신앙을 반영하며 다양하게 변천, 발전해왔다. 양식에 충실하고자 했던 개화기의 교회 건축은 개혁사상으로 충만한 당시의 천년왕국주의적 신앙 자세를 반영하며, 내부 공간보다는 외관 특히 종탑과 정면의 상징성에 치중했던 일제시대의 교회 건축은 현세 도피적이고 내세주의적인 신앙 체계를 반영한다. 그리고 6·25 전란 후의 성곽형 종탑의 석조 교회 건축은 하느님이 보호하는 견고한 성으로서 신비주의적이고 종말론적인 경건주의 신앙 태도를 보여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까지는 중세와 같은 사제 중심의 전례로서 신자들의 참여는 수동적이었다. 즉 말씀의 전례가 경시되었고, 성찬의 강조점이 나눔을 통한 일치보다는 봉헌에 있었다. 따라서 중세적인 긴 장축형 성당이 선호되었다. 반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는 사제가 신자를 향하여 한국어로 집전하고 의식이 간소화 되는 등 전례의 쇄신으로 능동적인 참여가 가능한 형태의 성당이 추구되었으며,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인 동시에 ‘신앙 공동체의 집’으로 표상되었다. 그리하여 60~70년대에 새로운 개념과 형태의 다양한 교회 건축이 시도되었다. 그러나 이념이 실제 전례 형태와 내부 공간의 구성에 연결되지 못하고 외형에만 치우치는 경우가 많았다. 즉 중앙집중형 성당도 신자석의 배열은 대부분 일방향이며 중앙에 배치했던 제대는 거의가 종전처럼 한 쪽으로 옮겨졌다.
1930년대에 지어진 대구의 N성당이 좋은 실례이다. 교회 건축가로 유명한 오스트리아인 건축가가 설계한 이 성당은 정방형 격자상에 배치된 단순명료한 입방체의 건물인데 제의실을 제외하고는 일체의 칸막이가 없이 내부가 십자형 콘크리트 기둥에 의해 분절되며, 몇 단 낮은 중심부의 한 중앙에 제대가 위치하고 주변부의 좌우에 감실과 세례반이 위치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명확하게 구현한 건물로서 초대교회와 같이, 사제를 중심으로 모든 신자들이 성사에 적극적인 참여가 가능한 형태였다. 그러나 몇 년 전 대대적인 보·개수 공사를 통해 제대를 한 쪽 끝으로 옮기고 출입구를 바꾸어 내부 구조를 종축의 장방형으로 개조하였다. 제대를 중심으로 한 구심적인 배열이 한국 신자들과 성직자들의 보수적이고 일방적인 예배 형태에 맞지 않았기 때문에 오랫동안 습관화 되어왔던 종축 장방형의 배열로 되돌아간 것이다.
오늘날의 교회 건축은 평면도 외관도 다시 장방형으로 되돌아가는 듯하다. 값 비싼 재료와 감각적인 기교로 장식에 치중할 뿐 내부 공간은 단조롭기 짝이 없다. 우리는 아직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정신을 교회 건축에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 교회의 세속적인 기능을 과감하게 수용하면서도 전례에선 각자가 사제의 인도를 받아 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획일적인 전례를 선호한다. 미사 중 신자들이 서로 마주 보거나 눈길이 마주치는 것을 어색해한다. 성가대와 봉사자 그리고 앞에 앉은 일부의 신자들 외에는 제단이라는 무대 위에서 공연되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받아먹는”낯선 국외자나 묵묵한 방관자이기 일쑤이다.
신앙을 생활화하지 못하는 형식적인 신앙에 대한 반성과 우려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양적으로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한 한국 교회가 정신적인 면에서는 나약해지고 있음이 전례와 교회 건축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동양 최대의 성전을 건립하는 것도 좋고 ‘오랜 세월’을 계획하는 대성전 건립도 의미가 있다. 그러나 신자들의 이중적인 신앙 체계와 물량주의가 그러한 초대형 성당에 그대로 나타나지 않을까 우려된다. 왜냐하면 아직 교회 신축의 이념이나 명확한 개념을 건축 프로그램이나 투시도에서 찾아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전례의 적응과 쇄신은 교회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자 가장 적절한 방법이다. 적응을 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교회는 시대와 장소에 맞게 그리스도의 육화를 끊임없이 연장시켜 나가야 한다는 교회의 본질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오직 교회가 선포하고 기념하는 신앙을 통해서만 이룰 수가 있다. 교회의 전례가 민족의 문화와 전통을 바탕으로 뿌리를 내릴 때 그에 걸맞은 건축 문화도 꽃 피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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