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일 요한 성인께서 관덕정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신 지 1백3여년이 흐른 오늘, 그분의 순교정신을 본받기 위해 성인의 후예인 우리 중·고등부 학생들이 다시 이곳에 모였습니다.
1876년 찬 바람이 유난히 매운 1월에 성인께선 마지막 순간까지 하느님의 사랑을 증거하시다가 휘광이의 번쩍이는 칼에 목숨을 잃으셨습니다.
"나는 이제 순교하러 떠난다. 너희들도 성실히 주님의 계명을 지켜 나를 따르도록 해라"고 이르셨던 당신의 말씀은 저에게 커다란 위로와 용기의 말씀으로 가슴에 남습니다.
피와 땀으로 얼룩진 옷자락, 매 맞아 군데군데 터져버린 육체, 그런 가운데서도 하느님을 찬송하는 노래를 힘차게 부를 수 있었던 것은 주님께 대한 믿음과 확신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성인이시여! 오늘의 우리 사회에는 배교를 권유하는 형리들의 위협보다 훨씬 더 달콤한 방법으로 하느님 곁을 떠나게 하는 갖가지 유혹들이 있습니다.
아직 학생 신분인 저희들에게는 유혹의 강도가 훨씬 더 크고 강합니다. 일주일 동안 영어 단어와 수학 공식에 빠져 사는 저희는 일요일 아침만 되면 쏟아지는 잠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미사 참례를 거릅니다.
언제 들어닥칠지 모르는 포졸들의 눈을 피해 미사라는 용어조차 쓰지 못하고 기도와 묵상으로 공소예절을 행하셨으며 대축일이나 멀리서 신부님이 오셨을 때만 성체를 받아 모실 수 있었던 당신이 사셨던 때의 모든 신자들은 하느님의 크신 사랑에 감격하여 눈물을 흘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하신 신부님의 강론을 생각해 봅니다.
하나뿐인 목숨을 버려가며 하느님을 증거하는 데 힘 쓰셨던 당신의 거룩한 순교정신이 절실히 필요한 때입니다.
이제 관덕정의 하늘에 붉은 노을이 피어납니다. 당신이 형장에 서셨던 그날도 어쩌면 저렇게 타오르고 있었을 노을. 우리의 주보이신 요한 성인이여 이 나약한 소녀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저의 가슴도 저 관덕정의 노을처럼 붉은 신앙으로 태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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