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철에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들의 부모들에게 입학 여부에 대하여 물어보는 것이 망설여진다.
입시에 실패한 젊은이들에게 격려와 위로의 말을 하고 싶다. “싸워서 실패하는 자가 되어라. 실패는 다음의 성공의 열쇠이다.” 무겁게 짓눌러 오는 현실을 도망쳐서 실패하느니, 젊은 기백과 야심을 가지고 온 정열로 맞서고 싸워서 최선을 다해서 실패한다면 그 실패는 실패가 아니고 다음에 성공할 수 있는 자산이다. 구약의 요나처럼 자신에게 부여된 사명을 도피하여 하느님 면전을 피할 수 있다는 망상을 버리고 인생을 진지하게 대면하기를 바란다.
주위 환경을 탓하지 말고 주위 환경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어라. 도전 받아서 투쟁하여 쟁취하는 자가 되어라. 주어진 도전장을 도피해서는 한 번도 승리할 수가 없다. 인생의 낙오자가 될 뿐이다.
“사람은 항상 자기의 현 위치는 자기의 주위 환경 때문이라고 탓한다. 나는 주위 환경을 믿을 수 없다. 이 세상에서 출세한 사람들은 일어나서 그들이 원하는 주위 환경을 물색했다. 그들은 그들이 원하는 주위 환경을 찾지 못하면 그것을 만들었다”(버나드 쇼).
시인 릴케는 “인생을 무거운 것에 기반을 삼아 그것이 우리의 임무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현대인은 귀찮은 것은 피하고 편리한 것만이 행복한 것이다는 잘못된 공식에 따라 살려고 한다. 인생이 우리의 위에서 덮쳐누르고 그것이 무서운 짐이 될 정도로 깊게 우리 인생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우리 인생에게 필요한 것은 쾌락이 아니라 바로 인생이다. 인생의 도피자와 낙오자는 인생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던 자들이요 자기들의 가장 고유한 본성으로 인생을 느끼고 채우기를 거부했던 자들이다.
시인 릴케는 “우리에게 요구되고 있는 것은 우리가 무거운 것을 사랑하고 무거운 것과 어울리는 것을 배우는 일입니다”라고 했다. 요사이 젊은이들은 편리한 것, 쉬운 것, 가벼운 것들만을 택해서 살려고 한다. 그래서 조금만 힘들어도 참지를 못하고 포기해 버린다. 자신을 이기는 극기훈련이 되어 있지 않다. 도전의식과 프론티어 정신을 갖고 무거운 것에 인생을 걸어야 한다.
“무거운 것 중에는 호의적인 힘이 있다. 우리를 재료로 하여 일을 해주는 손이 있다. 무거운 것의 한가운데야말로 우리가 우리의 기쁨, 우리의 행복, 우리의 꿈을 가져야 할 때인 것이다. 그러한 배경의 깊이를 앞세움으로써 행복도 기쁨도 뚜렷이 부각되고 그것들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비로소 알게 된다. 무거운 것의 어둠 속에서만 우리의 귀중한 미소는 어떤 의미를 가진다. 거기에서만이 그것은 깊은 꿈을 꿀 수 있는 빛을 내고 그것이 일순 펼쳐지는 광 속에서 우리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기적과 보물을 보게 될 것이다”(릴케).
인생이란 요행을 바라고 멈추어 설 수 없다. 왜냐하면 인생은 잡아 맬 수 없어 어디론가 매 순간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인생은 이미 출발되어 버린 존재요 그것은 일회적인 삶이요. 되돌아갈 수 없는 일방통행의 인생이다.
성 요한 보스꼬는 새가 나뭇가지 위에서 즐겁게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아뿔사! 그만 나무 가지가 똑 부러졌다. 그러나 새는 여전히 즐겁게 노래를 부른다고 했다. 왜 그랬을까? 새에게는 날개가 있어서 붙잡고 있던 가지가 뚝 부러져도 추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을 버티어 주고 자기의 인생을 보장해 주는 재산, 명예, 권력, 건강 등등이 무너져 버릴 때 절망의 나락으로 추락하여 인생을 저주하여 포기해 버린다. 그러나 믿는 이에게는 세상의 가치관에 붙잡히지 않고 복음의 가치관에 따라 통치된 삶을 영위하기 때문에 자신의 삶에 환난과 고통과 불행이 닥치더라도 흔들리지 아니한다. 믿는 이들은 이미 존재의 뿌리가 세상에서 하느님의 나라에 옮겨져서 세상이란 대지가 무너져 내리더라도 넘어지지 않으며 세상 사람의 눈에는 불행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은 오히려 참된 행복이 되는 가치관을 갖고 있다.
존재가 소유한 것에 소유 당하면 존재의 상실이 일어나고 그것은 곧 인간 상실을 가져온다고 실존주의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은 설파했다. 우리의 존재가 권력, 재물, 명예, 섹스 등등을 소유하고 있는데 반대로 어디까지나 소유에 불과한 권력이나 재물, 명예, 섹스 등이 자기 존재를 빼앗아 가버려 존재가 소유에게 소유 당해 버린 주객이 전도된 가치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 현대인의 비극 중에 비극이다.
하느님 대전에 내세워야 할 내 존재(인격)가 소유에게 소유 당해 버려 존재의 상실(인격 부재의 현실)에서는 하는님께 귀의할 주체가 없어져버려 하느님과 만남이 이룩될 수도, 친교와 사랑이 교환될 수도 없는 비극이 이루어진다.
부여 받은 생명이기에 생명을 주신 하느님 안에 귀의해야만 그 생명은 의미와 가치와 목적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버티고 있는 인생의 나무 가지가 뚝 부러진다 하더라도 믿음의 나래가 있기에 즐겁게 찬미의 노래를 부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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