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던 어느 날 파티마의 순례 동고상이 내가 소속하고 있던 본당에 오게 되었는데 나는 당시 봉사자였던 강야고보 형제의 인도를 받아, 푸른 군대에 가입하게 되었다. 그 후 성모 신심에 열심하였고 이를 레지오와 연결하면서 실질적인 활동은 물론 묵주의 기도를 바쳤으며 성모님을 따라 다니면서 묵주의 3일 가정기도와 철야기도 등 신자들과의 친교를 돈독히 하였다.
나는 성모 성심의 요청에 따라 나의 타고난 많은 재능들을 봉헌하였으며 많은 냉담자들과 함께 하며 가르치고 기도하는 봉사자로써 열심히 일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게 어찌된 일인가. 이처럼 누가 보아도 열심한 신앙생활과 봉사에 투철했다고 사람들이 입을 모아 칭찬들을 했지만 나는 그 엄청난 사고 앞에서 도무지 하느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병원생활이 만 6개월이 되자 거의 완전한 몸으로 소생되었으며 약간 짧은 왼쪽 다리를 절름거리며 아내의 손목을 잡고 병원 문턱을 나섰을 때 나는 참으로 세상이 아름답다고 생각했으며 모든 것이 생소하지만 다정하게 나에게 접근해왔다. 나는 망가졌던 이 몸을 다시 원상태로 소생시켜 주신 하느님께 감사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병원 정문을 나서는데, 빨간 천에 흰 글씨로 냉면이라고 쓰인 간판이 펄렁거리면서 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즉시 아내에게 냉면을 먹자고 하였다. 그동안 나는 병원에서의 식사가 신물이 났으므로 화끈하고 시원한 냉면 한 그릇을 먹고 싶었던 것은 당연했던 것이다. 아내와 함께 비빔냉면을 시켜 놓고 나는 정신없이 맛있게 먹어댔다. 한참을 먹다가 앞에 앉은 아내를 쳐다보니 아내는 지극히 맛있게 먹고 있는 내 모습을 슬픔과 기쁨이 범벅이 된 얼굴로 바라보면서 눈물만 흘리고 있지 않는가. 일순간 나는 그동안 아내의 간호와 슬픈 마음을 읽을 수가 있었다.
그로부터 일 년 동안 나는 집에서 통원치료를 하며 내가 하던 모든 사업들을 정리하고 사랑이 지극한 동생의 권유로 지금은 향도 부산에서 살고 있으며 사고 전의 서울 생활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삶을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지금 나는 동생과 제수씨의 따뜻한 사랑의 배려로 공기 좋은 금정산의 마지막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사직동에 살고 있다. 따뜻한 봄날에 이사를 왔으며 이곳 사직성당에서 신앙생활을 한 지 벌써 7년이나 되나 보다. 무엇보다 사고 전의 사회와 직장 생활에서 벗어나 무료하고 따분함으로 가끔 참기 어려웠을 때도 많았지만 할 수 있는 나의 재능을 모두 발휘하여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증거하는 데 모든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되어진다. 이러한 변화된 나의 삶은 내 안에 현존하시는 성령의 힘이었으며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께 대한 나의 가난한 응답이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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