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권해주신 책은 정말 감명 깊었습니다. 이번에도 그런 책을 한권 더 주십시오.』하루에도 몇 번씩 서원문을 들어서는 이들의 정겨운 목소리이다. 오랫동안 냉담하다가 우연히 서원에 들러 친절한 수녀님의 주선으로 고백성사까지 보게 된 어느 신자의 이야기며 시내 한복판에 이런곳이 있다는게 놀라움을 금치못하면서 새친구들을 데리고 오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는 이제 성바오로 서원의 공식적이고 통상적인 일들이 되었다. 그런데 가끔은 돌발적이며 예기치 않았던 사건도 일어난다.
6년전 어느날 서원 소임을 맡고 있을 때의 일이다. 전화의 수화기를 받아들자 점잖고 매끄러운 목소리의 상대방은 사회복지사업을 하는 수녀단체에 거액의 희사를 하고 싶다는 뜻을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자신이 노모를 모시고 있는데 장기간 외국에 나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어머니가 외롭지 않도록 가끔 방문해 달라는 조건을 덧붙였다.
오후 7시가 되자 나타난 그 주인공은 30대의 청년이었다.
수녀 두 명과 마주앉은 그는 유창한 말솜씨로 과거지사를 엮어낸 후 자기는 대단히 바쁜몸이므로 내일 당장 그 희사금을 은행의 비밀구좌를 통해서 주겠다고 하였다 (나는 지금도 그런 구좌가 있는지조차 모른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양복 주머니를 다 찾더니『아차 내정신좀 보게. 서울 갈 차비도 안남기고 다 예금을 해버렸네』하면서 몸이 불편해서 침대차를 타고 가야하니 차비 만원을 내놓으라는 요구를 당당하게 하는 것이었다.
대강 짐작이가는 바 있어『우리도 오후에 은행에 갔다왔습니다』하고 돌려보낸뒤 늦은 저녁식사를 하고 있는데 다시 그에게서 전화가왔다.
『아까 그 이야기는 없었던 것으로 합시다』하는 내용이었다.
수녀 둘을 설득시키느라 한시간 이상을 소모한 것이 무척이나 아까운듯한 목소리였다. 후에 안일인데 그는 교회 각 기관에 다니면서 소동을 벌였던 바로 그 사기한이었다.
성바오로 서원에 서 있으면 정말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된다. 도선생님(책을 가방에 슬쩍하는 사람) 매일 일급을 받아가면서 연말이면 보너스와 일급인상까지 청하는 동냥할아버지、수녀를 아줌마 또는 신부님이라고 부르는 이들、어떤 사람은 문을 밀고 들어오다『이크』하고 다시 나가버리기도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오래 닫혔던 마음의 문이 열리기도하는 성바오로 서원은 열려진 문이요 거리의 샘터다. 때로는 인생상담소요 성소자들의 복덕방이고 하느님과 사람이 데이트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곳에 서 있는 우리는 구원에의 안내역을 충실하고 친절하게 해내야 한다. 어떤 때는 교리교사、어떤때는 심리학자、필요에 따라 만능이 되기도 하는 우리에게 자주 상기되는 예수님 말씀이 있다.
『너희는 뱀같이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양순해야 한다』(마태10、16)
사기한에게는 슬기롭게、순박한 사람들에게는 비둘기 같은 다정함과 청순함으로 따뜻한 빛살이 되기를 오늘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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