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이 제정한「국제 청소년의 해」가 85년과 함께 저물어가고 있다. 폐막을 불과 보름정도 남기고 있을뿐이다.
지난1년간 우리교회는 「국제 청소년의 해」를 어떻게 맞고 대처해 왔는가? 결론부터 내리자면 청소년의 해와 관련、교회는 변죽조차 울리지 못했다고 감히 단언하고 싶다.
변죽조차 울리지 못했다는 단정적 표현에 지나치다고 이의를 제기할 사람 또한 별로 없으리라 생각된다. 올해 초 본보는 국제 청소년의 해를 맞으면서 미래 사회의 희망이자 교회의 보루인 청소년들과 그들의 문제를 교회의 시각에서 풀어나가는 「청소년 사목의 제언」을 마련、귀한 지면을 할애한 바있다. 당시 본보는 청소년 문제에 접근하기 위한 청소년 사목의 중요성을 누차 강조했고 교회 일각에서도 같은 견해아래 약간의 움직임이 이는 듯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나갔다. 그 1년간 교회는 과연 무엇을 했는가? 청소년의 해에 그들을 위해 어떤 노력과 시도를 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물론 지난 1년간 서울을 비롯 각 지역별로 청소년들을 위한 잔치가 몇 차례 열리기는 했다. 그러나 청소년 신앙대회、청소년 예술제라는 이름으로 열린 청소년들의 자리는 청소년의 해가 아니더라도 필요한 잔치였고 행사였다. 굳이 청소년의 해와 연결시키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적어도 청소년의 해에 기대됐던 것은 청소년들을 교회의 중심에 놓고보는 청소년 사목에 대한 마스터 플랜같은 것이었다. 부분적 치유가 아닌、원인적이며 전체적인 치유와 함께 해결방안을 교회에서부터 찾고자 노력하는 그 같은 자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소년의 해에 교회는 그 어떤 방법에도 접근하지 못했다.
이미 앞서 지나간 여성의 해 노인의 해 장애자의 해에 맛본 아쉬움을 또 다시 그대로 맛보는듯해 마음이 그렇게 무거울 수가 없다.
청소년 문제에 여유란 있을 수가 없다. 그들은 지금도 쉬지않고 성장하고 있고 문제의 조짐은 벌써부터 여러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드러나고 있기때문이다.
성당건립도 중요하고 여러가지 사업도 중요하지만 청소년사목은 더 이상의 강조가 필요없을만큼 시급하고 중요하다. 청소년의 해를 보내면서 교회는 청소년들에게만 인색해 온 지금까지의 입장을 버리고 청소년사목을 향해 교회의 힘을 집약해야 한다.
따라서 청소년사목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현재 소극적으로 실시되고 있는 청소년 사목활동을 전교회적인 차원에서 추진해 나갈 것을 강력히 제안하고자 한다. 아울러 각계 전문가들이 참여한 연구팀을 구성、실질적이고 효율적인 사목설계를 단계적으로 수립해나가야 할 것이다.
그것이 청소년의 해를 마무리하는 교회의 자세이자 미래교회에 대한 책임이기 때문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