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순환은 어김이 없고 시간의 흐름은 그침이 없다. 올따라 성탄절을 맞는 감회가 별로 밝지못한 것은 또 한해를 보낸다는 세모의 심란스러운 애상 탓만은 아니다.
◆힘없는 서민들만 불쌍해
경제부처의 최고 책임자가『공공요금의 인상을 최대한 억제함으로써 물가 상승요인을 견제하겠다』고 장담한지 열흘도 못가서 인상 러시사태가 빚어졌다. 우리 경제는 걱정없다고 큰 소리치던 양반들이 어느새 태도를 바꾸어『묘안은 없다. 근검 절약해야한다』고 궁색한 호소를 하고있다. 외채는 턱에 차고 보호무역주의의 장벽은 철옹성 같다. 그밖에 민생문제, 학원문제, 공해, 부실기업 등 해결해야 할 일들이 산덕된 판국에 국회는 사고기능이 마비되어 「구태 의연한」그 질척거리는 정치판을 벌리고있다.
국회의원들 자신이「하늘아래 둘도 없는 국회」라고 하니 더할 말이 없다. 불쌍한 것은 힘없고 돈없는 시정의 서민과 시골의 농민이다. 그들의 삶은 막다른 골목에서 헤어날 길이 없다. 다치게 한 자가 다친 사람을 윽박지르고 큰죄를 지은 자가 작은 죄를 지은 사람에게 호통치는 현실이다. 확실히 양지보다 음지가 더 많은 시대상이다.
그러나 비관만 하고 있을 수도 없는 것이 우리의 처지다. 벼랑에 서 있는줄 알면 희망은 있다. 따지고 보면 어느 시대나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어두운 국면은 있었다. 그래서 예수 아기는 해마다 다시 태어나야 했다. 어둠을 밝히기 위해 그 역사적 탄생이 거듭 획인되어야 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탄의 의미를 되새기기 보다 축제의 흥취를 돋우는데 더 열을 올린다.
◆불황이라는데…
우리 나라에서도 이맘때는 몸과 마음이 함께 바빠지는 사람들이 많다. 불황이라는데 호텔의 연회장이나 객실의 예약은 꽉 찼다고 한다. 그런곳의 크리스마스 트리는 휘황찬란하다. 서민은 방 한칸 늘리거나 화장실 하나 고치기도 힘들만큼 당국의 규제가 까다로운 그린벨트 안에 수십억원짜리 호화판 유홍 음식점들이 있다고 한다. 그런곳의 크리스마스 치장은 얼마나 화려할까? 불요불급한 소비재의 수입이 늘고 있다고 한다. 캐러맬 초컬릿 크래커 국수 같은 것은 작년에 비해 1백%이상 늘었고 쇼핑백, 가죽장갑 브러지어까지 쏟아져 들어온다고 한다. 이런 외제물건을 선물로 주고받는 사람들 중에는 집의 응접실에 예수아기의 고급 구여세트를 갖추어 놓는 이들도 많다. 그들은 하느님의 축복을 독차지한다. 그들의 축복을 독차지한 것처럼 즐거울 것이다. 그러나 예수 아기는 괴롭다.
성탄절이 믿지않는 사람들도 함께 기쁨을 나누는 국민적 축제가 된 것은 물론 반가운 일이다.
그럴수록 그리스도인들의 책임이 무겁다. 하느님의 아드님이 오신날이 허구로 얼룩지지 않도록 뭔가보여주어야 하기때문이다. 예수탄생설화에서 구유 소재는 목자 소재와 연관되고, 이것은 다시 베들레헴과 다윗의 목동생활과 연관된다는 목가적 감상에만 젖을 수는 없다.
◆허구로 얼룩지지 않게
구유 소재의 초점은 예수 아기가 인간사회에 받아들여질 자리를 찾지못하고 아주 비천하게 태어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구세주는 이렇게 탄생함으로써 인간회복의 새벽을 열었다. 그 기쁜소식이 당시사회에서 천대받던 목자들에게 제일 먼저 전해졌다는 것은 극적인 인간선언이다. 가난해서, 힘이 없어서 죄를 지었다고 해서、못난이라고해서 제대로 사람대접을 못 받는 이들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이란 무엇이겠는가? 그들도 어엿이 사람답게 살수 있고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것、그 이상의 복음이 있겠는가? 하느님은 그들을 부자나 높은 신분으로 탈바꿈 시키지는 않는다. 그들의 가난과 고통을 덜어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하느님은 예수를 통해 그들의 괴로움을 함께 겪으신다. 이것이 하느님의 사랑이다. 고통받는 사람은 자신의 아픔을 그럴듯한 말로 설명해주거나 일시적인 동정으로 위로해주는 사람보다 직접 자신의 괴로움을 힘께 나누는 이를 더 사랑한다. 이런 사랑을 주고받는 마음들은 하나가 된다. 이것이 하느님 안에서의 평화다. 예수의 탄생은 그 새로운 발걸음을 내디디게 했다. 그래서 예루살렘 모교회의 가난한 이들은 노래했다.
『하늘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사랑받는 이들에게 평화』-.
예수의 탄생 설화는 그분이 어떤 사명을 타고나셨는지를 일깨워준다. 그리고 그 사명은 도식적으로 이해될것이 아니라 시대적 사회적 요구에 따라 이해되어야 한다는것도 일깨워준다.
예수를 본받아 오늘의 소외계층에 하느님의 사랑과 평화를 전할 책무는 물론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다. 성탄절이라고 해서 의례적인 선물상자를 앞세운 자기 과시적 온정을 잠시 베푸는 데 그치지 말고 그들의 고통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행동으로. 혹은 적어도 함께 나누려는 실천 의지로 그들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때 비로소 오리게네스의 말대로 예수 아기가 우리 마음속에 태어날 것이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비로서 우리는 그분이 시작한 인간 회복의 장정에 동참하게 될 것이다. 이미 그 길을 가고있는「작은 예수들에게」샘솟는 용기와 희망을 주시기를 하느님께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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