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낙엽에 파묻히는 겨울속으로 바람이 숨는 12월이 되면 우리는 많은 기억들을 정리하게 된다. 그리고 예수들 믿는 사람들이나 믿지않는 사람들이나 모두 우리의 풍습인양 성탄을 축하하는 카드를 주고받는다. 조용한 사람들은 12월에 기도한다. 가난한 사람들의 행복은 먼 훗날의 축제라고 하지만 말 많은 사람들은 여유롭게 불우이웃들을 돕는다고 신문에 얼굴을 내보이고, 성금을 냈다고 방송에 나오기도한다. 또 길거리에선 종소리를 들은 어린아이가 엄마손을 잡고 가다가 자선남비에 백원짜리 동전을 집어넣는다. 그러나 내게 남아있는 12월의 기억은 여름날 먹장구름처럼 무겁기만 하다.
3년전 12월 중순 쯤 어느 날이었으리라、어렵게 살아가는 한 노동자들 모임에 초대를 받아 미사와 기도에 참석했던 기억이 있다. 보통 때보다 추운 날씨라서 옷을 두툼하게 입고 나섰다. 시내버스를 기다리고 있을 때 신문을 안고 다가선 소년이『신문 한장 팔아주세요』하고 반 애원 반 협박(?)조로 졸랐다. 순간 나는 어리둥절하여 어쩔줄을 모르고 있는데『오늘 실적을 올리지 못하면 가서 얻어 터져요、네』하며 더 가까이 다가섰다. 그때 앞에 선 그 소년의 얼굴은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었다. 물론 나는 신문을 보고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갈등이 일었다. 이 녀석에게 어떻게 해야할까? 필요없는 신문을 사야하는가? 그냥 돈만 몇푼 줄것인지? 다른핑계로 보낼것인지? 그때다. 내가 기다리던 버스가 왔다.
나는 바쁘다는 소리를 하는둥 마는둥 허겁지겁 버스에올랐다. 순간 차창밖에 서있는 신문팔이 소년의 눈과 내눈이 마주쳤다. 원망과 허탈의 눈빛이 내 눈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버스는 출발했다. 생각은 연속되어 무엇인가 할수 있었던 일인데. 아니 해야만 하는 일이었는데…
소년의 눈초리가 내 마음을 파고들어 가난한 이들의 모임에 참석하기위해 가는 내 마음을 더욱 무겁게 누르고 있었다.
우리는 이런 장면을 흔히 접한다. 그러나 이웃을 돕는다고 하면 물질적인 것만을 생각하기가 쉽다. 마음으로 도울 수 있는 방법도 있을텐데. 그 소년을 꼭 안아주며『많이 춥지?』라는 따뜻한 말이라도 할 수 있었을텐데、신문 방송을 통해서 누가 성금을 얼마나 희사했다는 보도를 접한다. 물론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사랑의 실천은 결코 큰 것만이 아니리라. 또 물질만도 아니리라. 때와장소가 따로 없으리라、
예수께서『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중에 가장 보잘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것이다(마태25. 40)』라고 말씀하셨다. 지금도 12월이면 그 소년이 생각난다. 무엇인가 할 수 있었던 일을 지나쳐 버린 나 자신이 미워지기도한다.
지금 나는 부끄럽다. 그래서 기도한다.
소년이 늘 착하고 건강하게 살아가라고.
× × ×
그동안 수고해주신 성바오로여자수도회 박문희 수녀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번호부터는 성베네딕또회 김병조(에드몬드) 수사님께서 집필해주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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