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주제로는 이제 할 말도 없다. 지난 15일간을 보고 듣고 한 것이 모두 물과 관련된 것이었고 이젠 정부의 대책이나 방침 정도는 아예 외울 정도가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마음속은 여전히 답답하다. ‘화려한 대책’ 속에서 ‘강물이 오물이 되는’ 꼴을 한두 번 보아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이야말로 우리의 생명을 이어나가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생명수다. 따라서 물은 인간을 죽이고 살리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예로부터 물을 잘 다스리는 사람이 성군이요 명군이라 했다. 실제로 치수는 한 나라의 흥망성쇠의 열쇠가 되기도 했다. 이는 세계의 역사가 입증하는 바이기도 하다.
물과 인간의 관계는 성경 속에서 더욱 흥미롭다. 모세 5경의 ‘탈출기’ 편에서 물은 야훼 ‘하느님의 권능’으로 표현되고 있다. 명화 중의 명화요 고전 중의 고전으로 꼽히는 영화 ‘십계’를 통해 비신자들과도 친숙한 홍해 바다 이야기는 출애굽의 절정이라 할 수 있다.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십계의 물은 모세의 지팡이 세례로 속절없이 갈라지고 뒤쫓던 이집트인들에게 경탄과 실망만을 안겨준다. 갈라진 물 속 길을 따라 모세의 이스라엘 백성은 줄행랑을 쳐버렸음은 물론이고.
탈출기 안에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물은 피가 되기도 한다. 지팡이가 뱀으로 변하고 파라오의 뱀들을 아론의 지팡이가 삼켜버려도 파라오의 고집이 무너지지 않자 이스라엘의 야훼는 드디어 물을 피로 만들어 버렸다. 야훼가 이집트에 내린 10가지 재앙 가운데 그 첫 번째가 ‘피로 변한 물’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 속에서 만날 수 있는 첫 번째 물 이야기는 ‘노아의 홍수’다. ‘창세기’ 앞부분을 장식하는 노아의 이야기는 죄악으로 가득 찬 당시의 세상을 물로 가차 없이 씻어내는 것이 중심 줄거리를 이루고 있다.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유일한 사람, 흠 없는 이로 표현되는 노아와 그 가족은 새 세상을 위한 준비에서 선택되고 살아남은 유일한 가족이었다.
어디 구약성서뿐인가. 하느님과 맺은 새로운 계약의 실체라고 할 신약성서에서 물은 믿음의 표징,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는 상징으로 대변되기도 한다. 우선 신약의 주인공인 예수께서 세례를 받은 곳도 갈릴래아 호수, 물속이었고 제자들을 놀라게 한 것도 물 위를 걸으신 스승 예수였다. 의심 때문에 물 위를 걷던 제자들이 물속에 빠진 것도 우리가 이미 아는 사실이지 않는가.
신약성서에서 물에 관한 압권은 영원한 생명에 대한 예수님의 약속이다. 요한복음의 예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며 그 사람 속에서 샘물처럼 솟아올라 영원히 살게 할 것이다”고 말씀하신다. 놀랍게도 이방인, 사마리아 여인은 그리스도의 영원한 생명수를 확실하게 믿게 된다.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 물은 ‘살수대첩’으로 가장 먼저 떠오른다. 고구려의 명장 을지문덕 장군이 수나라의 10만 대군을 ‘수장’ 시켰다는 그 유명한 이야기 말이다. 가난과 압제를 벗기 위해 우리의 조상들이 건넜던 얼어붙은 두만강, 그리고 압록강은 눈물의 강으로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았다.
가까운 역사 속에서 우리의 물은 다리가 끊겨 건너지 못했던 사람들의 한이 겹겹이 서린 6‧25의 ‘한강’을 상기시킨다. 먹느냐 먹히느냐의 마지노선이 되어버린 당시의 ‘낙동강’은 아예 핏빛으로 물들었다는 이야기도 바로 우리의 것이었다.
시간은 아주 오래 흘러갔건만 우리의 강물들은 여전히 ‘수난’이라는 굴레 속에서 페놀의 악몽이 낙동강과 국민들을 강타한 지 불과 2년 만에 우리를 덮친 낙동강 사건은 진정 깨어나면 그뿐인 악몽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대책을 놓고 정부 각 부처 간의 책임 소재와 의견 조정마저 삐그덕거리고 있다는 소식이다. 국민의 목숨이 달린 이 마당에, 나라의 생명줄이 썩어가는 이 판국에 아닌 말로 “귀신 씨나락 까 먹는 소리”가 아닐 수 없다. 물을 살리고 국민을 살리는 대책 마련은 지금 이 시점에서 최우선이 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하기야 대책이 없어 우리의 강물이 이 지경까지 온 것은 아니다. 대책이 화려하고 현란할수록 우리의 강물 역시 물이라는 이름을 달기가 민망해져온 것도 사실이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이 세상 천지에 먹는 것, 더구나 국민의 젖줄을 잘라 놓고 자기의 이익을 챙기는 사람은 우리나라 우리 국민밖에 없을 것 이다.
낙동강 사건은 비단 낙동강만의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우리의 강, 우리의 냇물, 우리의 생명 전체가 걸린 엄청난 사건이다. 이 엄청난 사건을 또 다시 일회성 사건으로 보내버리고 만다면 우리는 회생의 기회를 잃게 된다. 우리의 미래는 상상할 수조차 없게 된다.
이번 사건의 주범은 반드시 찾아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그와 더불어 정부와 행정 당국은 국민의 생명 관리를 책임 지지 못한 방관범으로써 공범임을 자인해야만 한다. 아울러 우리 국민 모두가 강물 오염의 현장범임을 함께 고백해야만 한다. 만일 우리의 이런 자인과 고백이 전제가 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강은 살릴 수가 없다. 우리의 생명은 보장 받을 수가 없다.
그때 남은 길은 오직 하나, 우리 모두가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사표를 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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