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나의 사고 경위를 회고하면 다음과 같다. 이른 새벽 오토바이를 타고 여느 때처럼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영업용 택시가 유턴을 하려다가, 앞에서 속력을 줄이고 달리고 있는 내 오토바이를 받았던 것이다.
후에 경찰 조사에 의하면 5m 가량을 내 몸이 하늘로 솟았으며, 떨어진 채 피투성이가 되었던 나는 근처 병원 응급실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회복실에서 깨어나기까지 나는 혼미한 상태였다고 봄이 타당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시간 동안 예수님과 성모님의 환시를 보았고 어디선가 들리는 묵주기도의 합송하는 소리가 귀에 들렸으며 이 소리를 듣고 나는 뇌수술 후, 전신마취가 풀리는 시간에 이르기도 전에 회복실에서 눈을 떴다. 입에 물려 놓은 물체 때문에 말을 할 수는 없었으나, 문 입구에 앉아 있는 간호원을 온 힘을 다해 불렀으며, 간호원이 다가오자 나는 아내를 불러 달라고 요청했다.
뒤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그때 내가 아내의 귀에 대고 했던 말은 이것이다. “여보, 나는 절대 죽지 않아! 나를 위해서 묵주기도 해 줘” 참으로 나는 나만 알고 있었던 그 환시를 통해서 나는 결코 죽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얻었으며, 나로 인해 가장 고통을 크게 받고 있을 아내에게 꼭 전하고 싶었던 마음뿐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이렇게 되어 나는 병실로 옮겨졌고 그때부터 병원 생활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사고 당시의 나의 다친 몸의 상태는 우측 두개골이 많이 깨졌고, 왼쪽 무릎 근처의 뼈가 부려졌었다. 그리하여 약 3개월 동안은 휠체어를 타야만 했다. 물론 용변을 보는 것조차 힘든 상태였다.
그러나 내가 이러한 상태로 침대에 누워 있을 때, 문을 열고 나에게 다가와 활짝 웃음을 짓는 막내아들을 보자, 나는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을 맛보기도 했다. 물론 근심 어린 모습의 아내도 다가와 내 손을 꼭 잡아 주었다. 평소에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았던 나는 가족의 만남이 이토록 좋은 것이구나 하는 생각에, 불편한 몸을 일으켜 아들과 아내를 반겼던 것이다. 그리고 나의 형제들과 친구들, 그리고 처가 식구들의 희생적인 간호를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 홀로 있는 시간이 점차 많게 되자, 나는 지금 이 순간까지의 내가 살아온 삶과, 76년 부활절에 영세를 받고 그동안 살아온 신앙생활을 놓고,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여기서 입교 동기로부터 시작하여 그동안에 내가 살아온 신앙생활을 솔직하게 펴보이고자 한다. 나는 76년 부활에 전 가족과 함께 세례를 받았는데, 세례 받기 전에는 가족 모두가 감리교 신자로써,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열심한 개신교 신앙생활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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