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이미 85세. 손이 떨리고 머리가 혼돈되어 사상의 표현마저도 자유스럽지 못하다. 이웃의 부축을 받으며 겨우 주일미사에 나오나 가끔 병원의 신세를 지다보니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다.
아내는 수 년 전에 ‘당신은 통일의 기쁨을 보고 천천히 오시오’라는 말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하느님을 무척이나 좋아하고 따랐기 때문에 영원한 평화의 나라에 안주했으리라 믿는다. 그의 뒤를 따라가야 한다는 생각이나 주님의 부르심이 없고, 조국 통일의 염원을 풀지 못해서인지 아직도 살아남아서 이웃들의 신세를 지고 있다. 그러면서 죽은 아내를 비롯한 우리 모두의 소망인 통일에 대한 이것저것 상상의 세계를 그려보기도 한다.
구교의 집안에 태어나서 해방 당시부터 신앙인으로서 주어진 처지에서 열심히 살아온 셈이다. 산내의 천주교 묘지 조성, 일본인들의 땅과 가옥을 합법적으로 흡수하여 학교와 성당을 짓고 지금의 본당 초대 회장으로서 관심을 갖는 등의 추억도 아마득하고 조국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 하는 자책뿐이다. 죽음을 앞둔 마당에 이제까지의 삶을 되돌아보니 허망하다는 생각과 아쉬움만이 다가온다.
먼저 간절한 소망인 조국의 평화적 통일이 이룩되지 않고 있다는 서글픔이다. 우리의 뜻이 아닌 외부의 작용에 의해 분단된 조국이 50년이란 세월이 흘렀는데도 분단 상태는 굳어지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 다 그동안 독일이 통일되었고, 러시아도 중국도 개방과 자유의 물결을 타고 개혁과 변화를 이룩하고 있는데 유독 우리의 남북은 긴장의 연속이며 미움과 갈등이 더해지고 있으니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더군다나 북쪽의 핵문제가 심각한 상태이다. 거기에다 우리 국민들조차 통일에 대한 관심과 염원을 아예 포기하고 안일한 사고에 젖어 있는 성싶어서 안타까운 심정이다 통일을 위한 기도도 준비도 부실했다는 생각이다. 화합의 묘도 사랑의 실천도 허술했다는 후회로움이다. 먼저 우리부터 화합을 이룩해야 한다. 미움과 원망, 시기와 갈등은 일치와 평화를 깨는 요소인 것이다. 조국의 통일은 이제 정치권에만 맡기고 태연할 수만은 없다고 본다. 종교인은 신앙적 차원에서 몫과 책무를 다해야 한다. 우리 천주교에서부터 통일을 위한 준비위원회를 교구별로 조직하여 대비를 서둘렀으면 좋겠다. 기도문을 만들어 기도에 충실하고 서로간의 이해와 용서의 삶을 다지며, 사랑의 쌀과 선물, 그리고 경제적인 준비도 갖추어야 한다.
통일이 되었을 때 북한의 선교문제도 매우 중요하며, 북한에서 몰려올 동포들을 맞아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통일의 기미라도 보고서 눈을 감고 싶어서 새해의 소망을 서투른 글로 피력한 것이다. 전능하신 우리 천주여, 우리에게도 통일의 은총을 내려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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