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중순경의 일이다. 행사 취재차 나갔던 외국에서 돌아오던 그 길은 참으로 상쾌했다. 20년이 가깝도록 해외 출장을 다녔지만 콧노래를 부르며 세관을 통과하기는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세관을 겁낼 이유는 언제나 없었지만 세관대 앞에 서 있노라면 그냥 싫고 언짢은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고 가방을 열어보거나 구두 질문만으로 그냥 통과한 것이 전부였음에도 불구하고 고국으로의 입성은 긴장 속에서 이루어지곤 했었다.
그날도 예의 그 똑같은 긴장 속에서 세관대 위에 가방을 얹은 나에게 세관원은 “지금 흐르고 있는 곡이 모차르트 곡이 아닌가”하고 물었다. 엉뚱한 물음을 받고 그를 쳐다보니 세관원은 콧소리로 실내 가득 흐르는 그 곡을 따라 부르고 있었다. 마침 나 역시「저 곡이 모차르트의 것인가」를 생각했던 중이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와 버렸다. 예기치 않았던 그의 물음에 고질적인 내 긴장병은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음은 물론이었다.
긴장도 풀린 김에 빨랫감만 가득한 여행 보따리를 그가 열어보아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세관원은 다시 “모차르트를 좋아하느냐”고 묻지 않겠는가. 그뿐이 아니었다. “고생 많이 하셨지요? 스페인은 무척 덥다는데…”고 인사까지 하면서 통과를 선언했다. 대화가 계속되는 동안 그는 시종 웃는 얼굴이었다. 그의 얼굴 한편에 콩알만 한 검은 점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다시 만난 서울은 참으로 반가왔다. 물론 기분은 최상이었다.
공항은 그 나라의 얼굴이다. 세관 역시 그 나라의 인상을 결정 지우는 첫 장소가 된다. 출입국 절차가 세련되지 못하면 두고두고 그 나라를 씹게 되는 것도 그만큼 첫 인상이 오래 남기 때문이다. 출입국시 쓸데없이 긴장으로 기분이 상하게 된 것도 어찌 보면 딱딱하게 굳어 있는 직원들의 얼굴 때문이 아니었던가 생각된다. 무거운 짐을 들고 우왕좌왕하는 첫 여행자들은 ‘고압적인’ 말투로 “이리 가시오 저리 가시오”를 지시하는 직원들에게 무서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특별한 죄가 없어도 큰 짐으로 인한 심리적 압박감이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외국의 유수 일간지는 우리나라 서울이 세계에서 가장 불친절한 도시 중 2위에 올랐다는 조사 결과를 보도한 바 있었다. 친절은 이미 실종된 단어이고 무질서만이 판을 치는 마당에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되면서도 충격은 금할 길이 없었다. ‘한국 방문의 해’가 열리기 불과 수개월 전의 일이었다.
그동안 우리가 외쳐온 한국방문의 해가 드디어 열렸다. 서울 정도 6백년을 맞아 설정된 한국 방문의 해는 이름 그대로 세계를 향해 한국의 문을 활짝 열겠다는 것이다. 문을 열고 안방을 보여주기 위해선 주인으로서 필요한 절차가 있다. 손님을 맞기 위한 준비 같은 것 말이다. 그러나 정도 6백년의 의미를 부각시키고 한국을 세계에 보여주겠다고 벼르고 있는 한국 방문의 해, 과연 우리는 무엇을 보여줄 수가 있다는 것인가, 어느 것을 보여주겠다는 것인가, 의문만이 앞설 뿐이다.
모든 것을 보여주기에는 우리는 국제적으로 너무 많은 부끄러움을 보유하고 있다. 낙태 1위, 고아 수출 1위, 강간 1위, 교통사고 사망률 2위, 대기오염·산재 사망 각각 1위…. 차마 나열하기조차 부끄러운 이 현상들은 불친절 2위와 함께 한국 방문의 해를 머쓱하게 만들고 있는 요인이 되고 있다.
우리 스스로도 불친절이 부담스럽기만 한데 외국인이라고 다를 리가 있겠는가. 우리에게도 터무니없이 비싸기만 한 물가를 외국인이라고 느껴지지 않겠는가. 특색 없는 상품들은 관광지마다 똑같고, 자동차 타기는 정말 무섭고, 게다가 한국을 느끼게 해줄 한국적 볼거리가 풍부하지도 않은데 누가, 왜, 한국을 찾겠는가 말이다. 시쳇말로 별 볼일이 없다는 것이다.
‘볼 것 없고’ ‘살 것 없고’ ‘느낄 것조차 부족한’ 우리의 현실은 지난해 한국을 찾는 관광객 수가 줄고 있다는 보도로 정직하게 입증이 되었다. 한국이 국가적인 사업으로 설정한 한국 방문의 해를 눈앞에 두었던 지난해의 이 결과는 방문의 해라는 타이틀이 없어도 관광객 수가 늘기만 한 주변 국가들과 좋은 대조를 보이고 있다.
지난 십 수 년 간 우리의 해외여행 자유화는 외국 각국에 어글리 코리언을 심는 데 기여해왔다. 여행사 모두가 한 사람의 좋은 외교관이 되기보다는 트러블 메이커로 한국인의 인상을 심어왔다고 한다. 오늘의 우리 현실을 직시한다면 한국 방문의 해는 이젠 손님까지 집으로 불러들여 어글리 코리아, 어글리 코리언을 보여주자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떠오르게 하고 있다.
한국 방문의 해는 국제화, 개방화를 향해 가는 세계적 추세에 걸맞은 주제가 틀림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한국을 충격 속으로 몰아넣었던 우루과이 라운드 타결 파문에서 하나의 교훈을 얻어야만 할 것이다. 그것은 전혀 준비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겉치장으로서의 준비가 아니라 진정 보고 싶은 나라, 느끼고 싶은 나라, 그리고 만나고 싶은 사람들로서 한국、한국인이 되는 시간으로 삼자는 준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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