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민족과 국가를 볼 때 항상 고유의 건축물이 그 문화의 척도가 되어왔으며, 건축은 ‘문화적 유산과 자산’으로서 이해되어왔던 것을 볼 수 있다. 인류가 가진 전 문화유산의 대부분은 바로 ‘건축’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그 중에서도 종교 건축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큰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근대 이전까지의 서양 건축사는 교회 건축 양식을 중심으로 서술되어왔을 뿐만 아니라 현대 건축에서도 교회 건축은 정통성과 역사성의 최후의 보루로서 인식되고 있다. 일천한 역사를 가진 우리의 교회 건축도 그간 한국의 건축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여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80년대의 급속한 교회의 성장과 발전에 걸맞은 교회 건축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도시, 시골, 성지 할 것 없이 유치찬란한 장식과 진부한 형태로 일관된 교회 건축물은 뜻 있는 신자들로 하여금 안타까운 정도를 넘어 분노를 자아내게까지 한다.
최근 교회 건축의 허약성과 진부함을 점차 세속화 되어가는 현대사회의 탓으로 돌릴 수만은 없다. 왜냐하면 사회는 항상 세속적이고 물질주의적이었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에 있어서 전례와 건축상의 빈곤함을 초래하는 것은 두 가지로 생각된다. 하나는 신학상의 혼란에 의해 방향과 확신의 결여이고 다른 하나는 프로패셔널리즘의 부재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열리고 전례헌장이 공포된 지 3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공의회의 정신을 제대로 이해하고 건축에 올바른 적용을 위한 실천적인 노력은 찾기 힘들다. (1969년 일본에서 발간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해설 총서가 이제 겨우 한국어로 번역·출판되었다) 교회가 튼튼하고 융성할 때 교회 건축은 풍부하고 표현적이다. 왜냐하면 신학과 선교·교회 예술의 깊이 사이에는 교회 역사상 뚜렷한 상관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유럽 교회가 가장 위축된 19세기 말에 교회 건축이 수용됐기 때문에 가장 저질적이었던 당시의 교회 건축을 가톨릭교회 건축의 원형으로 받아들였고 그 영향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토착화의 시도도 성과도 미흡하다.
전문가의 의견이 무시되고 어설픈 아마추어리즘이 횡행하는 한 훌륭한 교회 건축은 요원하다. 한국인 건축가가 양성되지 못했던 과거에 외국인 당가신부(경리 담당 신부)들이 교회 건축을 주도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고도 산업사회에서 전문 인력의 양성과 역할을 그 사회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이다. 이제 우리도 급격한 개방화 국제화 시대에 접어들기 시작하였다. 사회 각 분야가 전문화 되고 개혁을 위해 뛰고 있다.
그러나 교회는 교구장들의 뜻과 달리 현실 안주에 만족하고 있는 듯하다. 사제는 사목자라기보다는 교회의 관리자로 군림하고, 교회 건축의 주변에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도, 전례의 본질도 이해 못하는, 세례명을 액세서리로 달고 다니는 수많은 업자(?)들이 득실거린다. 조악스러운 상혼이 깃든 모조품이 성당을 가득 채운다. 교회 건축의 이념도 개념도 없이 무조건 크게 지으려 한다. 4천 평, 6천 평의 거대 성당이 지어지고, 허가 요건인 지하 주차장이 예사로이 용도 변경된다.
훌륭한 작품을 선정하기 위한 현상 설계도 교회의 편의에 따라 형식적으로, 가끔씩 불공정하게 치러진다. 빠짐없이 실리는 가톨릭신문의 성당축성 기사에도 외관 사진과 규모, 시공 회사, 건축 경비 등 물량적이고 외형적인 것만 언급될 뿐 정작 중요한 교회 건축의 이념이나 특징 등의 내용은 실리지 않는다. 건축을 아직도 형장에서 ‘땅 파고 벽돌 쌓는 것’ 정도로밖에 인식하지 못하는 지도급 인사들은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하기는 커녕 귀찮아하고 쓸 데 없는 간섭으로 오해하기조차 한다.
건축가에게도 잘못이 없는 것이 아니다. 항상 바쁜 프로 건축가는 허가만 내어 줄 뿐 끝까지 책임지지 않고 전문적인 연구와 서비스를 외면한다. 열악한 보수와 무리한 요구에 신앙심으로 인내할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흔히 교회의 건축 과정을 오케스트라 연주에 비유한다. ‘지휘자’인 건축 설계자가 도중하차하니 연주가 제대로 될 리가 없지 않는가?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Ecclesia semper reformanda)”라는 격언이 있듯이 우리 교회는 현실 안주에 만족하지 않고 항상 엄격한 자기반성을 통하여 더 높은 차원으로 도약하여 하느님 나라를 이 지상에 구현하기 위해 개혁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 훌륭한 교회 건축 문화의 창달을 위해서 신앙과 신학의 토착화를 위한 노력을 전개함과 동시에 새해엔 제발 그 어설픈 아마추어리즘이 사라지고, 전문성이 존중되는 풍토가 우리 교회 안에 조성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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