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속까지 시린 파란 하늘을 향해 “신부님!”하고 가만히 불러본다.
하얀 입김 속에 크고 작은 그리움의 방울들이 일렁이더니 이내 신부님의 인자하게 웃으시는 모습이 되어 가까이 계신다.
내가 최바오로 신부님을 봬온 것은 11년 전. 성당에 가면 휘-익 수단 자락에 바람을 일으키며 이곳저곳에 잘못되고 흐트러진 점을 잘도 찾아내시고는 이내 불호령이 떨어진다.
그러면 그곳은 새로운 생명으로 바뀌곤 하던 무섭고도 이상한 힘과 매력을 함께 지니신 신부님으로 기억된다.
그런데 그렇게 무서운 신부님께 찾아가야 할 일이 생겼다.
한참을 걱정하고 망설인 끝에 신부님께 말씀드리면 틀림없이 도와주실 것 같다는 믿음이 용기를 갖게 했다.
“신부님, 어떤 가난한 이가 엄동설한에 운영하던 가방공장에 불이 나서 오갈 데 없음은 물론이고 애기들 하고 끼니까지 걱정해야 합니다”
딱한 소식을 들으신 신부님께서는 본당 사회복지분과에 연락해 곧바로 큰 도움을 주셨고 그분들은 새로운 삶의 희망을 얻게 되었다.
그렇게 인연이 되어 그 후 사회복지분과 일을 도우면서 참으로 하느님의 귀한 사랑을 많이도 체험할 수 있었다.
본당 예산의 10%는 어려운 이들의 몫으로 주셨고 그 사랑은 틀림없이 그들에게 삶의 큰 희망이 되곤 했다.
그때 만들어진 사랑의 장학회는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매 분기 40여명의 어려운 학생들에게 배움의 길을 도와주고 있다.
신부님께서는 늘 당신은 하느님이 보내신 파출부란 표현을 즐겨 쓰셨는데, 어떤 형태로든 당신이 대접 받는 것은 사양하셨고 때론 냉정히 거절하셨다.
특히 가난하고 힘없고, 보잘 것 없는 이들에게는 따뜻한 아버지셨고, 언제나 그들 가까이에 계셨다.
그러나 정작 자신에게는 냉정하고 인색했으며 조심스러우셨다.
뇌수술 후 노사제의 삶은 눈물 나는 자신과의 싸움이었고 말 그대로 피나는 득도의 나날이었다.
돌보아드릴 이조차 없는 외롭고 힘든 시간들을 불편 한마디 없이 하느님께 온전히 자신을 내어 맡기신 채 천진한 아기처럼 사셨다.
죽는 날까지 사는 게 숙제라고 하시며 행여 누구에게라도 폐를 끼칠세라 조심하시던 노사제의 흐트러짐 없는 단아하고 청정했던 삶을 가까이에서 뵐 수 있던 날들이 다 분에 넘치는 은총의 시간들이었구나 싶다.
아무리 다시 뵙고 싶대도 이젠 다 부질없는 희망사항이 되어 버렸다.
인간적으로는 너무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신부님의 훌륭한 삶과 가르침, 특히 가난한 이들을 진정 딱하게 여기시던 그 크신 사랑은 아름다운 향기가 되어 영원히 우리 곁에 머무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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