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전의 참화가 온 땅을 초토화시키고 있는 보스니아 그리고 헤르체고비나, 그 중심부에 조용히 자리하고 있는 작디작은 마을 ‘메주고리에’ 역시 평화를 잃어버린 채 또 다시 한 해를 마감했다. ‘메주고리에’는 많은 이들이 이미 알고 있는 바대로 현대의 성모 발현지이다. 물론 메주고리에는 발현에 대한 교회의 공식적인 인준은 아직 없는 ‘사건’이라는 사실은 미리 밝혀두는 것이 옳을 것이다.
새해 첫 칼럼에서 메주고리에를 들고 나온 것은 바로 새해가 ‘가정의 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메주고리에의 이상한 사건이 반복해서 강조하는 중심 메시지가 역시 ‘가정’이라는 일치 때문이다.
지난 90년 늦가을 방문한 바 있는 메주고리에는 그 당시까지도 가정에 대한 메시지가 목격자들을 통해 순례자들이나 방문자들에게 전달이 되고 있었다. 물론 발현을 목격한다는 목격자들과 그들의 증언을 인정하는 메주고리에의 성 제임스 성당 측의 입장 쪽에서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그때까지 순례자들을 위해 자신이 목격한 발현에 대해 증언하고 있던 이반과 비치카 등 두 명의 목격자들은 (그곳에서는 선견자로 불리고 있었다) 그 아름다운 부인이 “가정에서 가족이 함께 기도하라” “하느님과 화해하고 이웃과 화해하라” 그리고 “회개와 보속으로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라”고 말씀하셨다고 증언하고 있었다.
메주고리에의 메시지는 파티마, 루르드 등 기존의 성모 발현지에서 이미 나타난 핵심 주제인‘회개’가 골격을 이루고 있다. 선견자들은 “이 세상은 신앙의 위기를 겪고 있으며 인간들이 잃어버린 도덕성을 회복하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었다.
그러나 메주고리에의 그 아름다운 부인이 가장 우려하고 있는 것은 바로 ‘가정의 파괴’였다. 선견자들은 그들이 보았다는 아름다운 부인은 거의 두 쌍의 부부 당 한 쌍의 부부가 이혼하는 오늘의 세태, 그리고 낙태와 유아 살해로 해마다 수백만 명의 생명이 살육 당하는 오늘의 생명문제를 가장 우려하고 있었다고 강조했다.
메주고리에는 그 메시지를 근거로 1990년 8월 ‘가정의 해’를 선포했지만 그 아름다운 부인의 경고는 구체적 사실로 드러나고 말았다. 불과 수개월 만에….
내가 목격했던 유고슬라비아의 아름다운 산천, 유서 깊은 문화 유적들은 이미 거의 모두 파괴되고 말았다. 그림 같이 유려했던 아드리아해의 보물 ‘드브로브니크’와 프란치스꼬성당, 가톨릭과 회교 그리고 러시아 정교의 종교적 유적들이 사이좋게 공존해온 문화와 역사의 도시 ‘모스타’의 그 조화로운 균형미도 이제는 볼 수가 없게 되었다.
어디 그뿐인가. 가정이 기도하고 회개하라는 아름다운 부인이 간곡한 요청에 이끌려온 마을이 기도로 하나가 되고자 했던 메주고리에, 그 기도의 현장에서 함께 기도하며 자신을 변화시키고자 했던 무수한 순례 행렬, 기도하는 모습 그 자체로 이미 기적을 연상케 했던 메주고리에의 평화를 이제는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게 되었다.
외신이 전하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참상은 참으로 끔찍하다. 인간의 생명이 휴지 조각만도 못한 그곳에 가정이 온전할 리가 없다. 오직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과거의 핍박을 보복한다는 이유만으로 아니 경제적 이익을 나누지 않겠다는 지독한 이기심으로 그곳의 모든 가정은 깨어지고 흩어지고 말았다. 돌이켜 보면 메주고리에의 발현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모든 가정의 피 흘림을 예시한 것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교황은 올해 평화의 날 메시지에서 “분쟁이나 전쟁의 첫 번째 희생자는 가정이며 평화가 없어진 가정 속에서 희망의 미래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교황의 지적대로 오늘의 세계는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가정 파괴가 자행되고 있다. 가난과 빈곤은 가정의 생존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무관심과 이기주의로 비어 있는 가정이 늘어나고 결국 우리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조차 없는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사회의 기초, 기본 단위인 가정이 흔들리면 그 사회 그 국가가 흔들리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이다. 가정이라는 틀 속에서 인간이 자연스럽게 터득해야 할 평화를 배우지 못한다면 우리는 평화라는 미래를 차지할 수가 없다. 평화가 없는 미래, 그것은 미래가 없다는 표현으로 대신할 수가 있다.
교황의 지적대로 가정이 사회를 구성하는 기초이듯이 교회를 이루는 기초 역시 가정이라고 할 수 있다. 교회의 핵심적인 사목 대상이 가정이어야 하는 것도 이에 기인한다.
가정의 해인 올해 우리 교회는 그 어느 때보다 바빠야만 한다. 가정을 하나의 공동체로 회복시키는 일에서부터 비어 있는 가정을 함께 채우고 쪼개어진 가정을 이어주는 일에 이르기까지 교회는 가진 손과 발을 모두 동원해야만 할 것이다.
다행히 국제 가정의 해에 한국 교회의 움직임이 심상치가 않다. 교구 내에 가정사목위원회를 설치하는 일과 본당 내에 가정사목분과 등을 마련하는 일도 추진되는 모양이다.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가정사목 자체에 초점을 둔 일련의 기획과 준비들은 가정의 해를 여는 이아침, 신선한 청량제가 되고 있다.
가정은 ‘작은 교회’라 칭한다. 작은 교회의 행복은 곧 모든 교회의 행복과 기쁨을 상징한다. 새해는 모든 이들의 집이요 가정인 교회가 그 문을 활짝 열고 모든 이들을 하나로 받아들이는 진정한 의미의 가정의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끼리만의 교회’가 아니라 외롭고 버림받은 모든 사람들, 삶에 지쳐 고단한 사람들의 위로와 희망의 안식처로서 진정 따뜻하고 ‘사랑받는 교회’가 되었으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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